김윤담의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
참 쓰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를 미워한다는 이야기라니. 그렇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열었다. 허영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딸이 열 살 되던 해에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며 집을 나갔다. 그는 딸이 스물여덟 살 결혼할 때 딱 한 번 나타나고는 끝이었다. 남편 대신 가장 역할을 떠맡은 엄마는 젊고 아름다웠으나 표독스럽게 딸을 대했다.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 하더니......'라고 하면서도 아들한테는 쩔쩔매는 게 이상했다. 대신 딸에게는 가차 없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차비가 없어 오늘만 택시를 타고 가도 되겠느냐고 묻는 딸에게 "걸어와."라는 말을 남기고 차갑게 전화를 끊은 엄마였다. 딸은 어려서부터 엄마의 화풀이 상대였고 '정서적 학대'의 대상이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세상에 내 얘기를 한다는 뜻이다. 내 이야기가 아무리 억울하고 기가 막혀도 얘기 안 하면 모른다. 하여 김윤담은 브런치 등 SNS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공감은 용기를 주었다. 글쓰기에는 치유 효과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김윤담은 책을 씀으로써 엄마라는 억압적 우주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항상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사람과의 악연을 어떻게 해야 할까? 끊어내야 한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운명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보다 과감하고 냉정하게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전보다 사람이 독해져서가 아니라 인권과 개인주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불합리함과 비인간적인 태도까지 인정할 수 없다는 시민의식이 뿌리를 내려 다시 개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엄마와 연락을 끊는 건 천륜이나 도덕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8년 정도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다가 작년에 장례식에만 참석한 경험이 있기에 저자의 심정에 더 동감할 수 있었다. 김윤담은 말한다. 더 이상 미워하지도, 연민하지도 않은 채, 끝내 닿지 않을 거리에서 서로의 안녕을 빌면서 살아가자고.
프리랜스 기자답게 글이 담백하고 문장도 좋다. 하긴 그러니까 다람의 박혜진 대표가 책으로 내자고 했겠지. 물론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만 토로해서는 책 한 권을 쓸 수 없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읽은 심리학 관련 책 얘기도 나오고 정신과 상담 내용도 나온다. 남편과 시댁, 아이 얘기를 할 때는 아주 밝다. 나는 특히 정신의학과 교수님이 해준 얘기가 인상 깊었다. 엄마가 밉지만 그런 엄마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교수는 "만약에 환자분이 독감에 걸려서 열도 나고 기침도 나는 상태라고 해 봐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더 큰 병에 걸렸어요. 그럼 환자분은 안 아픈 게 되나요?"라고 묻는다. 저자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교수는 이어 말한다. "그거 보세요. 환자분도 아파요. 고통을 겪는 사람은 나예요. 그러니 죄책감 가지실 필요 없어요." 아주 합리적이고 속이 후련한 충고였다.
새 책 원고 마감 시점에 도착한 책이라 읽는 게 부담되었지만 박혜진 대표가 친히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주고 주소를 물어서 보내준 책이라 잠깐만 읽어보자 하다가 이내 빠져 들어서 다 읽고 말았다. 센 제목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구입해 읽어 보시기 바란다.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통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상처를 아프지 않게 건드리고 각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