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Oct 28. 2024

두 번 본 연극 ’모든‘의 두 번째 리뷰

김정 영출의 <모든> 리뷰


’모든‘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첫 날 보고 어제 막공을 또 본 이유는 솔직히 김정 연출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연극을 조금 열심히 보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은 좋아하는 배우가 생기고 작가, 연출가가 생겼다는 것이다. 박근형이나 고선웅처럼 이미 인정받은 연출가들의 작품도 좋아하고 지금도 또 계속 보지만 ’이 불안한 집‘을 통해 만난 김정 연출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김정은 천재적인 면도 있지만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다. 몸과 정신을 던지는 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라이카라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돌보는 A구역 사람들의 이야기 ’모든‘은 A.I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편안한 돔에서의 삶이 왜 착취적이고 비인간적인지를 보여주는 SF드라마다. 모든 잘 된 드라마가 다 그렇지만 이 연극 역시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이리저리 뜨겁게 고민한다.


생태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얘기했듯이 자연은 순혈주의를 싫어한다. 다른 피가 섞이고 오염물질이 들어와야 발전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 완벽‘은 언어도단이요 모순이다. 금이 가고 균열이 올 때 발전한다. ’모든‘에서 그 균열은 두 가지로 발현되는데 하나는 랑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가리의 무좀이다. 무좀균 때문에 온몸이 근지럽다고 화를 내는 가리에게 라이카는 ”가려움증은 아픔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다. 인간 사회의 모든 기쁨과 슬픔, 아픔과 안전을 케어하고 해결하는 A.I에게 인식되지 않는 현상은 없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가리는 지금도 온몸을 긁고 있는데.


또 하나는 논리보다는 공상을 좋아하고 실재하지 않은 걸 그리워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 랑의 탈출이다. 바깥으로 나가면 죽음이 있을 뿐이라고 라이카는 말하지만 랑의 천진난만함은 그 통제를 무시할 정도로 힘이 세다.  ’마음의 문을 여는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라는 헤겔의 명제는 랑의 진취적인 무모함에 딱 들어맞는다.


첫공보다 연기의 합이 좋아졌고 최소한의 무대장치만으로 SF적 상상력을 발현하는 무대는 역시 좋다. 연극이 끝나고 로비에서 김정 연출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마침 이주영 선생이 같이 계셔서 반갑게 인사했다. 이주영 선생은 주간경향에 [이주영의 연뮤덕질기]을 연재하는 분이다. 그야말로 덕후인 것이다. 류혜린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아졌길래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안 보여서 그냥 왔다. 아내가 다른 일이 생겨 관람을 포기하는 바람에 강종희 선생과 봤는데 연극을 다 보고 무척 좋아했음은 물론이다. 어제가 막공이었다. 그럼 어떡하냐고? 다음 시즌을 기다리면 된다. 더 좋아진 작품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벨상과 상관없이 계속 한국소설을 읽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