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괜찮아, 앨리스》
1년 내내 국어·영어·수학 같은 주요 과목은 하나도 안 배우고 시험 스트레스, 성적 스트레스도 없다. 여기 청소년들은 대입 준비 대신 춤이나 악기를 배우고 연극을 함께 만든다. 이런 학교 얘기를 하면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런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있고 그 학교에 자식을 맡긴 부모들도 있다. 그들은 말한다. 삶을 바꾸고 세계관을 바꿨더니 하루하루가 행복해지고 졸업 후에 낙오되기는커녕 대부분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살고 있다고. 이런 신기한 얘기를 들려주는 영화를 CGV용산 특별시사회에서 봤다. 강화도에 있는 '꿈틀리인생학교'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다.
덴마크가 세계의 모든 나라 중 행복지수 1위를 계속 놓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던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는 직접 덴마크로 날아가 '에프터스콜레(Efterskole)'라는 교육제도를 목격한다. 그 나라는 인생이 행복하려면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던지고 청소년 시절에도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고 시행착오도 겪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인 나라였다. 그들의 삶이 부러웠던 오 대표는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Efterskole)'를 모티브로 삼은 1년짜리 인생설계 학교를 설계하고 강화도에 세웠다. 매년 1억 원씩 적자가 나는 '사업체'지만 거기 와서 새로운 삶을 만난 뒤 비로소 푸른 청춘답게 소리 지르고 깔깔깔 웃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감히 접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TV 구성작가로 일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던 양지혜 감독은 어느 날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막히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여학생의 사연을 인트로에 넣었다(학생 이름을 잊었다. 미안하다). 나름 우등생이고 정말 최선을 다 했던 그 학생은 문득 억울해졌다. 가기 싫어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학교에 가야 하나. 그런데 학교엔 왜 가기 싫을까? 뭔가 배우는 순간 즉시 시험문제로 변해 평가받기 바쁘기 때문이다. 배우는 게 즐거울 리가 없다. 적응을 잘 못하고 말썽만 피우는 아이를 '문제아'라고 부른다면 학교야말로 '문제학교'다. 모든 교육과정이 문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강화도에 꿈틀리인생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거기를 가도 될까. 거기 보내도 될까. 인생 망치는 거 아닐까. 과감하게 토끼굴로 들어갔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용기를 내본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괜찮아, 앨리스'가 되었다.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한 말이다. 이 아포리즘을 그대로 적용시켜 보면 우리나라 학생 대부분은 노예의 삶을 산다.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하는데 늘 미래를 준비하느라 허덕인다. '우리에게 현재의 삶은 없다. 중학생은 중학생이 아닌 예비 고등학생으로 불리고 고등학생은 고등학생이 아니라 예비 대학생 취급을 받는다.'는 어느 남학생의 말이 인상 깊었다. 이 영화는 '꿈틀리인생학교'의 프로파간다가 아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어른들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설득의 심리학이요 친구들과 경쟁하며 사는 거라고 배워온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죽비다. 시사회에 초대되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 좌석에 앉아 함께 영화를 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두 아들이 생각났고 미안했다고 말했고 강유정 영화평론가도 자신의 딸이 중3이라며 경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드렸고 동네에서 보던 백영욱 작가와 임그린 기획자 커플을 극장에서 만난 것도 신나는 일이었다. 이 영화의 배급을 맡은 미디어나무의 김성환 대표는 영화가 더 많은 관객들에게 닿도록 '100개의 극장'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바람대로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일 전날인 11월 13일에 개봉한다. 극장이 많지 않으니 일삼아 찾아보시기 바란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