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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0. 2019

내가 청문회에 나가면

태권도 흰 띠로 제대했습니다


조국 후보자 얘기로 나라가 뜨겁다. 누구든 고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청문회에 나가 '깨를 할딱 벗고' 탈탈 털리는 걸 볼 때마다 혹시 내가 저기 나간다면 어떤 질문을 받고 어떤 해명을 하게 될까 상상해 보게 된다. 물론 나는 학력, 능력, 경력 등 무슨 력이든 다 모자라니까 청문회에 나갈 일 자체가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에, 혹시나.  

여자문제, 거의 없었고. 임신, 혼외, 양다리 없었고. 재산증식, 아주 없고. 위장전입, 복잡해서 할 줄 모르고. 입학 특혜나 취업 압력은 자식이 없으니 해당사항 무. 부부사이는 약간 원만한 편이나 다른 가족관계는 수십 년째 화목하지 못하고. 교우관계 역시 별로 안 좋고. 경력관리 형편없고. 전문지식 짧고. 시사교양 박약. 행동력 제로. 건망증 만땅. 섬망증 약간.  

청문회 위원들이 조사하면 뭐가 나오려나. 혹시 내가 대학시험 볼 때 체력장 점수 만점 못 받아 기죽을까봐 우리반 서울대 특기생이 내 꺼까지 넓이뛰기 두 번 나가서 겨우 20점  채웠던 거? 아니면 군대에서 태권도 하기 싫어 내내 도망다니다 흰띠로 제대 한 거?


아니다. 어쩌면 너무 한심해서 그냥 통과시켜줄지도 모른다. 연애할 때마다  채이거나 괜히 어깃장을 놓아 매번 눈물바람으로 끝난 것도 한심하고. 출세욕이 부족해 광고판에서 크게 인정받을 기회마다 번번히 놓친 것도 한심하고. 대리 때 다른 대행사 면접 가서 당신이 쓴 카피 하나만 대보라고 할 때 댔더니 "카피도 아니구만!"이라고 비웃던 심사위원 앞에서 바보처럼 하하 웃은 것도 한심하고. 스물 살 때 여자애랑 여관에 가서 둘 다 옷까지 홀딱 벗고도 겁이 나서 밤새 손 잡고 키스만 하다가 그냥 나온 것도 한심하고... 아아, 내가 미쳤구나. 취소, 취소. 취소. 방금 한 말 다 취소합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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