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크림슨파더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 북토크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난데없는 계엄령 발령과 해제 소동 이후 대한민국은 꽝꽝 얼어붙었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는 윤석열 체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에 쏠렸고 그건 밤낮없이, 직업이나 신분과 관계없이 24시간 지속되는 것이기에 다른 사안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당연히 국가경제도 얼어붙었습니다. '소행성 책 쓰기 워크숍'에 예약했던 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취소를 통보해 온 것 역시 계엄의 여파였죠. 저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워크숍 날짜와 가격을 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 책은 2024년 12월 10일이 초판 발행일인데 대부분 일주일쯤 쯤에 실물 책이 배포되므로 그야말로 계엄과 날짜를 딱 맞춘 듯 책이 나왔죠. 다행히 책을 기다려준 분들이 계셔서 금방 초판을 다 팔고 2쇄를 찍을 수 있었지만 북토크는 이미 예약되어 있던 북살롱 오티움 행사 말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로 크림슨파더에서 '희망을 전하다' 전시를 기획한 한선우 대표님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행사 안에 제 책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메디치미디어) 북토크를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이상훈 배우에게 낭독을 부탁하자 한 사람도 한 대표였습니다. 하지만 계엄 여파 때문에 홍보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한 차례 연기를 해 2월 22일 토요일 오전 11시에 북토크를 열었습니다.
장소도 협소한 데다가 홍보도 하지 못해 참석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행사장을 찾아주셨습니다. 언제나 기획자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아내 윤혜자는 기존의 강의식이나 인터뷰 방식에서 벗어나 이번 북토크는 '토크쇼'처럼 꾸며 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생각해 볼수록 좋은 아이디어였죠.
행사 당일인 어제 오전 11시에 제가 나서서 첫인사 삼아 토크쇼 형식 이야기를 드리고 이어 이상훈 배우와 한선우 대표를 소개했습니다. 평소 좋아했던 책이나 영화, 연극, 드라마의 문장들을 메모했기에 책을 내는 게 가능했다는 이야기로 토크를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건 내가 아니라 메모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는 거죠. 다소 미련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저의 메모 노트들을 여러 권 들고 가 보여드린 것도 그런 실천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마침 책을 만들어 준 이솔림 에디터가 와 있었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한 번 했습니다.
아울러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에서 열린 북토크 행사이기에 연극 리뷰 쓰는 법에 대한 미니 강연도 했습니다. 영화 '동주'를 본 아내가 많이 울어서 할 수 없이 수육을 한 접시 시켰다, 라고 쓴 두 줄짜리 리뷰에 많은 분들이 웃었고 장강명 작가가 페이스북 담벼락에 썼던 짧은 리뷰 글과 '독하다토요일' 회원들이 쓴 짧은 독후감도 소개했습니다. 영화 '첨밀밀'을 열 번도 넘게 본 제가 '등을 보여주세요'라는 제목의 리뷰를 쓴 이유는 작품의 전체를 다루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해서라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이상훈 배우는 김지운 에디터가 쓴 '능소화가 왜 능소화인지 아시나요?'라는 글을 시작으로 '백석평전'에서 제가 발췌한 부분을 낭독해 주었고 후배 연극인인 김정선 배우와 조경현 배우도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에 실린 글들을 읽어 주었습니다. 두 분은 이상훈 배우 초청으로 급하게 무대에 선 것이었는데 제겐 너무 행운이었죠. 행사 마지막엔 서예가 이수봉 선생까지 나오셔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이수봉 선생은 이상훈 배우의 아버지이시기도 합니다).
긴 외국여행을 끝내고 돌아오자마자 행사에 참여해 준 여행가 김혜민 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여행은 돌아다니며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라는 말을 했더니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습니다. 외국여행에서 돌아온 지 하루 만에 찾아온 또 한 사람은 베스트셀러 작가 김민식PD였습니다. 그는 저의 첫째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부터 팬이었다며 특히 자기는 '읽는 기쁨'이라는 책을 정말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김민식PD는 유튜브에 출연해서 제 책을 소개해 주기도 했죠.
페이스북에서 친구로만 알고 지내던 sabina Jang 선생이 오신 것도 너무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아티스트 모지민을 만났던 인사동 술자리에서 한 번 뵈었던 최유진 선생이 북토크에 와주신 것이었습니다. 최 선생은 "책이라는 건 굉장히 어렵고 심각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있구나, 라고 깨달았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옆에 앉아 계셨던 조용필 선생 역시 페이스북에서만 뵙던 분이었죠. 조용필 선생은 제주도에서 올라왔다고 하시며 제가 책에서 인용했던 김미옥 선생의 글을 보드에 필사하고 직접 읽어주셨습니다. 이은옥 선생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와서 학생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해 줄 수 없느냐'라는 즉석 강연 제안을 주시기도 했고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죠. 북토크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토크쇼 도중에 퀴즈를 내서 맞출 때마다 제가 쓴 캘리그라피 액자를 선물로 하나씩 드렸는데, 저와 함께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오영미 배우가 '고명재 시인이 할머니와 반으로 나눠먹던 얼음과자의 이름'을 맞춰 선물을 타가기도 했습니다(정답은 더위사냥). 연극 세트 디자인을 하는 이인애 선생은 북토크가 끝나고 명동에서 충무김밥을 사주시고 저희와 함께 낭독공연을 보기도 했고요.
아내와 저는 한선우 대표와 북토크와 낭독을 잘 엮으면 양질의 강연 콘텐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북토크를 실행하며 새로운 강연을 기획한 것이죠. 제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을 만나고 새로운 강의 계획까지 하게 된 이번 행사 역시 많은 것을 얻고 누린 북토크였습니다.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