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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넷플릭스에 있는 조 라이트의 어톤먼트(Atonement)

by 편성준


어젯밤 넷플릭스에서 어톤먼트(Atonement)를 찾아서 다시 보았다. 낮에 이 영화의 OST를 들으며 그 유명한 타자기 소리가 너무나 강렬하게 나를 영화를 보고 싶은 욕망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서로 깊이 사랑하지만 동생 브라이오니의 철없는 거짓말 때문에 헤어지게 되고 마침 터진 2차 세계대전에 휩쓸려 비극적 결말로 치닿는 세실리아와 로비의 청춘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아울러 시얼샤 로넌은 어렸을 때부터 너무 연기도 잘하고 카리스마 있었구나, 제임스 맥어보이는 참 기품 있는 미남배우로구나, 키이라 나이틀리는 도대체 대체불가의 스타로구나, 어,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여기 나왔군, 등등 감탄에 또 감탄을 더하며 보았다. 조 라이트의 유려한 연출력은 말할 것도 없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때문에 알게 된 '덩케르크 탈출' 시퀀스에서 조 라이트 감독이 왜 그렇게 모험적인 원 신 롱테이크를 감행했는지도 어제야 확실히 그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그 장면 찍고 긴장이 풀린 나머지 오열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인터뷰 장면은 정말로 기억이 안 난다. 이게 기억이 안 난다는 건 결국 영화의 가장 중요한 반전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 아닌가. 창피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 나는 컨디션 난조로 하품을 참아가며 겨우 극장에서 버텼다. 이래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영화는 나중에라도 꼭 다시 찾아보아야 한다. 안 그러면 '좋았다는 잔상'만 남는다.


새벽 한 시 반에 잠자리에 들면서 이 영화의 원작자인 이언 매큐언은 이 영화를 보고 얼마나 기뻐했을까를 생각했다. 어톤먼트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같은 고전 문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한 사람의 거짓말이나 오해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서사는 헨리 제임스와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적 기법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런 역작을 쓰고 맨부커상까지 받은 이언 매큐언이 실로 부러웠다. 나도 픽션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껴안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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