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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던 김선형 선생의 강의

최인아책방의 '햄릿 원전 읽기' 강연

by 편성준


최인아책방에서 열리는 김선형 선생의 '햄릿 원전 읽기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김선형 선생이 써 놓은 강의 소개글을 읽고 너무나 그 수업이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댓글을 달았더니 한 번 와 보지 않겠냐는 답장을 주신 겁니다. 저는 수업료 대신 제 책 두 권을 가져갔습니다(결론적으로 말하면 말도 안 되게 모자랍니다. 책 열두 권은 주고 들어야 하는 수업이었죠. 최인아 대표께서 제가 와도 된다고 허락을 해주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저는 영화나 연극하는 사람은 물론 다른 분야 사람들도 어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왜 그렇게 셰익스피어의 말이나 대사를 인용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 의문이 좀 풀린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서구에 끼친 영향은 문학에 한하지 않습니다. 김선형 선생이 하나하나 맥을 짚어주며 설명을 해주는데, 예를 들어 헤럴드 볼룸의 마지막 책 제목(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은 물론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처음 미국 번역본 제목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뽑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제작한 드라마 'Band of brothers'조차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의 대사에서 나온 것이더군. 리버 피닉스와 키애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My Own Private Idaho'에도 <헨리 5세>와 똑같은 상황의 대사(죽을 것처럼 괴롭지만 너를 추방한다 : I banish thee, on pain of death)가 나옵니다.


이런 신기한 지식을 BBC에서 제작한 '햄릿'을 비롯해 세계적인 셰익스피어 덕후 캐네스 브래너나 오슨 웰즈 같은 감독들의 작품, 그리고 미니멀리스트 피터 브룩이 만든 '햄릿'까지 동영상으로 틀어주며 설명을 하니 정말 토요일 아침부터 머릿속에 셰익스피어가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었습니다.


김선형 선생은 '문학적 언어는 표면적 의미와 잠재적 의미 두 가지로 움직인다'라든지 '번역자는 문학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문학적이라 합의된 것들을 옮기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인문학적 통찰을 보여주는 얘기를 끊임없이 했습니다. 저는 서구에서 창조적인 것들을 표현할 때는 임신(pragnant) 관련 표현이 많다는 사실도 어제 처음 알았고 'lunatic' 정도의 의미는 알았지만 'Airy and light' 'frenzy' 'conceit' 같은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숨은 의미는 어제 비로소 맛본 것들이었습니다. 이래서 '영어로 읽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셰익스피어엔 너무 많다'는 이 강의의 모토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무엇보다도 햄릿의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가 그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다운 고결함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 라는 어마어마한 철학적 질문을 품고 있는 문장임을 안 것이 가장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김선형 선생도 그걸 얘기하고 싶어서 저를 부른 것 같았고요. 다만 '햄릿'에서 폴로니우스가 한 대사 'Still harping on my daughter'가 유명한 페미니즘 책 제목으로 쓰였다고 하던데 그게 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혹시 아시는 분 제게 알려 주세요. 더 쓰고 싶은데 오늘 저도 책쓰기 수업이 있어서 너무 바쁩니다. 강의가 끝나고 김선형 선생이 "편성준 작가가 오셨다"라며 제 소개를 하시는 바람에 앞으로 나가 "이런 강의를 매주 듣는 여러분은 행운아입니다"라고 말하고 내려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선형 선생님. 나중에 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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