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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저씨의 등장

공사할 때 생가는 일들

by 편성준



점심시간이 지나서 현장으로 갔다. 서울에서 강연을 하느라 며칠 머물다 오랜만에 현장으로 왔더니 벌써 지붕 마무리 공사가 다 끝나고 장 반장님은 바닥에 보일러 관을 깔고 있었다. 공사가 진척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집의 내장을 구경하는 기분이 든다. 생물의 생체기관이 하나하나 생겨나는 걸 목격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현장에선 '파저씨' 이슈가 화제였다. 어떤 남성이 와서 뒷문 옆 공터 '자기 땅'에 파를 좀 심어놨는데 우리가 공사하면서 그걸 마구 해쳤다며 항의를 한 것이다. 공사를 하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해본 임정희 목수님이 침착하게 그 남성에게 가서 물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나? 농사꾼이에요. 왜요?"

"농사꾼이 왜 남의 땅에 파를 심어요?"

" 여긴 내 땅이라니까. 오래전부터 내가 심어 먹던."


파저씨, 그러니까 '파 아저씨'의 주장이 사실일 수 없는 건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공사 전 우리가 돈을 들여 경계측량을 한 것도 바로 이런 시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마침 분할신청을 해야 하기에 아내와 시청에 가서 파견 나와 있는 LX 직원에게 물어보니 파저씨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그 땅은 당연히 우리 땅이고 그 옆도 도로에 속해 있으니 나라땅이지 개인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파저씨의 소유권 주장은 엉터리라는 얘기를 하다가 임 목수님이 요즘 점심을 순댓국에서 콩나물국으로 바꿨더니 돌아서면 배가 고프더라는 말을 했고,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기 회식을 하자고 받았다. 자신은 고기를 먹지 않지만 2주일에 한 번씩 하기로 한 회식은 장어나 삼겹살처럼 기름지고 단백질이 많은 음식을 택하는 아내다. 대천삼겹살과 벌떡장어에 갔었으니 이번엔 보령에 사는 자란 님이 추천한 대포식당에 가기로 했다. 삼겹살로 유명한 집이란다. 내가 6시로 에약하는 소리를 듣더니 김치열 목수님이 "저희는 5시 반에 가 있을게요."라며 웃는다. 아침 7시면 일이 시작되는 현장이기에 끝나는 시간도 이른 것이다. 나는 나의 느린 센스를 반성하며 예약시간을 5시 반으로 수정했다. 지난 주부터 금요일에 서울에서 글쓰기 강연이 있어서 이제부터 보령 현장 회식은 목요일에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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