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키링 시저》리뷰
김재규를 생각한다. 정신적 아버지였던 박정희를 시해한 10.26은 '계획적이라고 하기엔 너무 우발적이고 즉흥적이라 하기엔 치밀한' 이상한 반역이었는데 이 궁금증은 김재규의 최후 진술에서 풀린다. 그는 박정희라고 하는 절대권력 폭주기관차를 멈추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자신의 생명과 안위를 버릴 결심을 한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결단이었지만 세상은 그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 또 다른 악당인 전두환 일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기원전 44년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갈리아 전쟁에서의 승리와 내전에서의 성공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쥔 율리우스 시저는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릴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갈리아 전쟁에서의 승리와 내전에서의 성공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쥐었고, 이에 원로원 내에서는 그의 권력 집중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포함한 공화정 수호자들은 시저의 독재를 막기 위해 암살을 결심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가 오세혁 작가와 김정 연출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마당극에서 뮤지컬까지 못 하는 게 없는 대학로의 총아 오세혁은 다른 이야기들을 모두 거둬내고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이 시저를 암살하기까지의 고뇌와 그 실천 만을 다룬다. 김정 연출은 완벽주의자답게 배우들을 엄격하고 세련되게 조련했다. 그래서 '응팔'에서 보았던 어리숙한 손호준은 사라지고 야심만만한 시저가 무대 위에서 포효한다. "그냥 크면 뭐 해? 잘 커야지"라는 대사를 스마트폰 광고에서 내뱉던 유승호는 자신의 CM 멘트처럼 제대로 잘 성장한 배우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연기뿐 아니라 노래로도 비극미를 더해주는 양지원은 이 극의 흐름을 단단히 받쳐주는 자산이다. 채석진의 연주와 노래, 그리고 지미세르의 음악연출은 비극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데 모자람이 없고 그 음악에 맞춰 긴장감을 잃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율동을 보여주는 코러스들도 베테랑 배우들로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이 작품만의 성취다.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기 일쑤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통해 인간이 현실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연민을 대리 경험하고 내면을 정화한다고 했고 니체도 '비극은 삶을 긍정하는 가장 깊은 예술'이라고 했다. 이 말들은 비극이야말로 슬픔을 덜어주는 역설적 위로의 장르라는 뜻 아닌가. 서강대 메리홀에서 오세혁과 김정이 만들어낸 비극을 경험하시라. 젊고 힘 있는 배우들의 연기와 멋진 음악이 지친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다. 7월 20일까지 서강대 메리홀에서 공연한다.
● 오세혁 작
● 김정 연출
● 채석진 지미세르 음악
● 권혁 안무
● 남경식 무대
● 토브씨어터컴퍼니 기획 제작
● 양지원 손호준/김준원 유승호
서창호 손지미 권창민 김동원 홍은표 김재형 박창준 출연
● 공연 기간: 2025년 5월 10일 ~ 7월 20일
● 공연 장소: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