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직접 쓰는 진주문고 북토크 후기
보령에서 진주까지는 꽤 먼 거리입니다. 하지만 진주문고의 여태훈 대표와 이병진 팀장이 부른다면 아무리 멀어도 가야죠. 이번엔 아내도 같이 가겠다고 해서 작년에 구입한 중고 미니쿠퍼를 운전해 가기로 했습니다. 군산과 전주를 거쳐 세 시간 넘게 운전을 하니 이병진 팀장이 예약해 준 '진주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짐을 풀고 잠깐 쉰 뒤 오후 다섯 시 반에 송기원진주냉면에서 고강훈 선생과 이병진 팀장과 여성 직원분(이름을 들었는데 까먹었음)을 만나 냉면을 한 그릇씩 먹었습니다. 그리고 진주문고에 갔는데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다가 여태훈 대표를 만났죠. 웃으며 반갑게 악수를 하고 5층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여 대표님이 내려주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점 사업도 12.3 계엄 이후 너무나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하는 여태훈 대표의 표정은 믿음직하고 밝아 보였습니다.
북토크가 열리는 2층 여서재에 가서 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사회를 맡아 준 고강훈 선생은 진주문고에서 열리는 북토크마다 매번 참석하는 열혈 멤버인데 저도 진주문고에서 2022년 10월 5일에 열린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북토크 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저희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 멤버가 되었고 그때 쓴 원고를 고치고 보태서 출판공모전에 냈다가 당선되어 첫 책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302편이나 응모했고 문학과 비문학 통틀어 겨우 4편 뽑는데 에세이 부문에 당선되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죠? 그러고 보니 이병진 팀장과의 인연도 꽤나 깁니다. 2015년 겨울 박근혜 정부가 기습적으로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을 합의했을 때 너무 화가 나서 아내와 통영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 자판을 꾹꾹 눌러쓴 '나는 차라리 니가 나가서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글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고 방송국에서 웹툰으로 만들자는 전화가 오기도 했죠. 그날 갔던 통영의 독립서점 '남해의봄날' 직원이 바로 지금의 진주문고 이병진 팀장입니다.
저는 '편애를 해야 정말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있다'는 말로 저의 책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의 북토크를 시작했습니다. 책에서 제가 고른 문장들은 모두 저의 '편애 목록'이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죠. 객석에는 저희 부부에게 늘 애정을 쏟아주시는 정시원 선생 부부가 와 계셨고 아내와 제가 10년째 계란을 공급받아먹고 있는 '자연이네유정란'의 송헌수 선생도 와 계셨습니다. 너무 반갑고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미처 몰랐는데 이상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을 받고 진주문고 상주작가로도 활동했던(그리고 지금도 글쓰기 강좌를 맡고 있는) 서장원 작가도 와서 앉아 계셨습니다. 개그맨 전유성 선생도 어느새 와서 조용히 앉아 계셨고요. 북토크 도중에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도 찾아다녀야지."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제 북토크이긴 하지만 저를 전혀 모르는 분도 계시기에 카피라이터로 살던 시절부터 그동안 제가 낸 다섯 권의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에 수록한 글들을 읽어나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돌 작사가의 '늦었지만 늦지 않았어'를 낭독했고 고명재 시인이나 이자람 소리꾼의 글도 소개했습니다. 아울러 객석에 계신 분들께도 김규림의 '매일의 감탄력' 등의 낭독을 부탁드렸습니다. 낭독이나 질문을 한 분들께는 고강훈 선생이 가져온 북마크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고 선생이 개인적으로 준비한 이 북마크엔 제 책 제목이 새겨져 있습니다. 눈물 나게 고마운 마음의 선물이죠.
저는 '필사는 적극적으로 책을 읽는 행위'라고 규정하며 책을 읽을 땐 밑줄을 치거나 책장을 접는 등 함부로 다루어야 자신의 취향이 생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하는 것'이라며 황인숙 시인이나 김종삼 시인의 시를 읽어 드렸습니다. 필사를 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맨 오른쪽에 앉아 있던 전유성 선생이 최승자 시인의 '근황'을 필사하셨길래 왜 이 시를 고르셨냐고 물었더니 "이 시가 PPT 화면에 제일 오래 떠 있었어요."라고 대답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진주문고에 갈 때마다 와주시는 페친 하미옥 선생은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라는 니체의 말에서 역설적인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젊은 참가자 중 한 분이 글과 책을 쓰는 방법과 자세에 대해 묻길래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쓰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대답해 드렸습니다. 하다가 멈추면 그냥 멈추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아,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자괴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용한 문장들은 책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대사들도 많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나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명대사들을 소개하고 《건축학개론》에서 한가인이 했던 서글픈 대화도 소개했습니다. 영화 《아저씨》에서 한 형사가 구내식당에서 했던 대사 "이모, 반찬이 죄다 잡범이네. 아니, 어떻게 살인사건이 하나도 없나?"라는 대사를 듣고 다들 박장대소했을 때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노력이 보상을 받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북토크 마지막엔 아내 윤혜자까지 무대 위로 올라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인상 깊은 작품을 묻는 질문에 저는 에드워드 리의 『버터밀크 그래피티』에 대해 얘기했고 윤혜자는 일 년 넘게 읽고 있는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를 권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 뒤풀이 때 이변진 팀장은 이렇게 늘 새로운 독서 목록을 업그레이드하고 그걸 얘기할 수 있는 게 저의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늘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는 영광스러운 칭찬이었죠(어제 아침에도 보령에서 아내와 비슷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내는 '당신의 장점은 글 쓰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라 말했고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시원 선생이 늘 차 트렁크에 넣고 다닌다는 와인 두 병을 꺼내 게스트하우스 방바닥에 놓고 마시며 "와, 대학 엠티 온 것 같아요."라며 속 없이 웃고 떠들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아내와 진주성 촉석루를 산책했습니다. 여기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의기논개'라는 미니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더군요. 이런 곳에 가면 영어 설명문을 읽어보는 버릇이 있는데 '의기'는 Righteous Entertainer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아, 논개는 영어로 하면 '의로운 연예인'이 되는구나 하면서 남몰래 혼자 웃었습니다. 정시원 선생 부부와 하동책방에 들러 강성호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책을 샀습니다. 강 대표가 간디학교에 다닌다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제 책 『읽는 기쁨』을 선물하겠다고 해서 저자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강 대표는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하동책방 오픈 때 제가 썼던 슬로건 “책, 햇볕에 펼치면 지식이 되고 달빛이 물들면 문화가 된다.” “불 꺼진 지리산 자락에 지혜의 등불이 되고 싶습니다.” 등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곡성으로 달려가서 김탁환 작가를 만났습니다.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에서 앞치마를 입고 손을 흔드는 김탁환 작가를 보니 반가움이 왈칵 몰려왔습니다. 온다 온다 하면서 못 오다 이제야 몇 년 만에 다시 왔구나, 하는 마음에 보령으로 이사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왜 보령이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이러려고 왔다고 대답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서울이 아닌 보령이라 군산도, 진주도, 곡성도 선뜻 가볼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서울이 아니라서 가능했던 환대와 우정, 고마움이 뒤섞인 일박이일이었습니다. 모두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고강훈 작가 북토크 때 또 봬요. 아, 제 북토크 때도 오세요(아직 책은 안 썼지만). 앞으로 책을 내면 무조건 진주문고에서 북토크 열게 해 주겠다고 여태훈 대표님이 약속하셨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