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배우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에서 필사

by 편성준

우리는 모두 배우다. 나는 편성준이라는 남자를 연기 하고 윤혜자는 윤혜자라는 여자를 연기할 뿐이다. 재밌는 건, 의외로 연기가 적성에 맞아 하루 스무 시간씩 나의 역할을 잘 해낸다는 점이다. 연기를 안 하는 시간엔 뭘 하냐고? 분장실 거울 앞에 앉아 운다. 분장을 지우면서 운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드냐고,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냐고 한숨을 쉬면서 운다.

그러다 연기를 마친 동료 배우가 분장실로 들어오면 나는 금세 활짝 웃는다. 눈물 자국은 파우더로 가렸다.

내가 없었으면 아마 거울 앞에 앉아 울었을 그도 내 어깨를 치며 활짝 웃는다. 우린 모두 썩 괜찮은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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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령시립도서관 필사수업 시간에 한 분이 제 책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중에서 골라준 문단입니다. 이걸 읽고 울컥했다고 합니다. 하루하루 연기하듯 살아가는 모습이 공감되어서요.

제주도에서 첫 책 원고를 쓸 때 욕실 거울 앞에 서서 이 생각을 했던 게 단박에 기억났습니다. 그때는 참 막막하고 외로워서 쓴 글인데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반갑군요.

누군가가 제 글을 기억하고 다시 소환해 의미를 부여해 주는 기쁨. 아마도 작가들은 이런 희열과 보람 덕분에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고맙습니다. 조X영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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