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회의’에 쓴 『버터밀크 그래피티』 리뷰
<흑백요리사>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아내가 참가자인 에드워드 리의 인터뷰 기사를 보내주었을 때도 약간 시큰둥했다. <한겨레> 이유진 기자가 쓴 『버터밀크 그래피티』 북토크 관련 기사였다. 인터뷰를 읽어본 뒤 나의 태도는 돌변했다. “여보, 당장 이 책을 사야겠어.”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미국 남부 요리의 상징적 재료인 버터밀크와 저자가 어렸을 때 영향을 받은 그래피티 예술을 합친 말을 제목으로 삼았다. 별 상관없는 두 가지를 직렬로 놓은 게 심상치 않았다. 이상한 예감은 뉴올리언스의 식당을 찾아가면서 윌리엄 포크너 이야기부터 꺼내는 데서 더욱 커졌다. 요리사가 포크너의 작풍과 작품 내용을 너무나 잘 설명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수년 동안 ‘베녜’라는 도넛의 레시피를 찾아다녔다고 고백하며, 사실 베녜의 레시피는 너무 간단해 60초 안에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훌륭한 이야기가 모두 그렇듯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다”라는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은 요리를 잘하는 인문학자구나.
에드워드 리는 뉴욕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등록금 마련을 위해 식당에서 아침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브랜디라는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말하자면 매춘으로 먹고살며 아이를 키우는 처지였는데 에드워드는 성노동자이면서도 명랑한 그녀가 애처로워 주인 몰래 커피를 사주거나 샌드위치에 베이컨을 넣어주곤 했다. 단골이 된 그녀가 알려준 음식이 베녜다.
‘도넛 순례’라는 제목의 첫 번째 꼭지에는 대학 다닐 때 동거했던 일본인 여자친구 얘기도 나온다. 일본 음식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그녀는 결혼을 원했지만 에드워드는 거절했다. 그 후 두 사람은 대화를 단절한 채 냉장고에 차가운 메모를 붙이며 소통을 대신하다가 헤어졌다. 그는 브랜디나 일본인 여자친구 모두 자신과 너무 달라서 ‘친구’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음식은 달랐다. 서로 성격이 다른 세계가 만날 때 가장 흥미롭고 훌륭한 음식이 탄생하기도 한다. 뉴올리언스의 베녜에 일본의 말차를 뿌리는 식으로 말이다. 디저트 이야기 속에 소설처럼 두 여자의 이야기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내가 만난 여자들과 해결하지 못한 다름을 이 디저트는 조화롭게 승화한다’라는 마지막 문장에 나는 연필로 줄을 박박 긋고 이런 찬사를 써넣었다. ‘글을 정말 잘 쓴다(알고 보니 뉴욕대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 책은 저자의 세 번째 책이다.
에드워드 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식당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요리사의 정체성이 별로 필요 없는 유명 식당이고 또 하나는 수프 한 그릇을 맛보면서도 셰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는 식당이다. 그는 당연히 후자에 속하는 식당들을 취재하고 글을 쓴다. 그는 접시에 담긴 음식만 평가하는 평론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 음식은 저마다의 풍부한 이야기와 사람을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낯선 식당에 가서 주문하는 방법도 재미있다. 새로운 지역으로 가면 그는 인터넷으로 평점이 가장 높은 식당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곳을 제외하고 두 번째나 세 번째로 인기가 있는 곳에 간다. 인기의 허상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더 인상 깊은 것은 낯선 이름으로 가득 찬 메뉴판을 보다가 주문하는 순간 웨이터가 “정말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을 법한 음식을 선택하는 용기다. 틀리기 싫고 모험도 하기 싫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MBTI부터 물어보는 이 시대에 에드워드 리가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웠던 대목은 그가 브루클린의 브라이튼 해변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스무 살 무렵 보았던 닐 사이먼의 연극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을 떠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 페이지에서 “대공황을 배경으로 유진 제롬과 그의 폴란드 유대인 가족의 성장사를 그린 닐 사이먼의 희곡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을 읽었다”라고 쓰고 있지 않은가. 가족들과 핫도그를 먹으며 걸을 땐 등으로 바람을 막으려 아무리 애써도 모래가 함께 씹혔던 기억이 난다는 묘사에서는 이민 가족의 가난함과 씁쓸함이 묻어나기도 했다.
이슬람교도가 많이 사는 디어본으로 음식 기행을 갔다가 라마단, 즉 금식 기간에 걸려 덩달아 굶은 사연도 재미있다. “이슬람교도만 금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어느 노신사의 질문은 에드워드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금식은 고통받는 이들의 괴로움을 경험하기 위해 인류애 차원에서 하는 것이지 종교적 제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네 시간 삼십 분만 더 있으면 먹을 수 있다” “이제 한 시간 남았다” 하며 실시간으로 괴로워하는 저자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나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하루 꼬박 금식을 해봐서 그 심정을 잘 안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깨달음은 금식을 깨는 ‘이프타르’ 때도 계속된다. 참았던 첫 끼니를 먹기 위해 많은 양의 음식을 주문하는 그를 보고 식당 주인이 준엄하게 꾸짖는다. “해가 진 뒤 과식을 하려고 종일 금식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전통에 대한 고민이 많다. 어떤 음식에 ‘전통’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옳음과 그름이 따로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전통에 권위가 더해지면 위험해진다고 생각한다. 대신에 그는 ‘연결’의 소중함을 안다. 음식은 결국 문화와 사람의 이야기기에 어떤 것과도 연결이 가능하다. 그는 텍사스 안에 베트남 문화가 자리 잡는 걸 보며 놀랐던 호기심이 이 책을 쓰게 했다고 한다. 버터밀크와 그래피티가 연결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에드워드 리는 2010년 미국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아이언 셰프>에 출연해 우승한 한국계 미국인 셰프다. 그는 2023년 백악관 국빈 만찬 게스트 셰프로도 이름을 알린 바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관찰과 취재, 문장력에 두루 탁월한 작가다. 이 책을 놓치지 마시라.
편성준 작가
20여 년간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다. 2020년 퇴직 후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몽스북),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행성B),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북바이북), 『읽는 기쁨』(몽스북),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메디치) 등을 펴냈고 글쓰기 강연과 책 쓰기 워크숍을 한다. 유머와 위트 있는 글을 지향하며 출판기획자인 아내, 말 많은 고양이 순자와 산다.
<기획회의> 633호 2025년 6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