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연극이 주는 희비극의 즐거움

연극 《유령(I'm nowhere)》리뷰

by 편성준

황정은의 에세이 『일기』에는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불분명해져 임금차별·고용차별을 받던 전 직장 동료들 얘기가 잠깐 나온다. 그들 대부분은 가정폭력의 피해자다. 남편이나 아버지 등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들로부터 도망쳐 나온 그들에게 사회는 차가운 곳이다. 주민등록을 갱신하면 가족들이 주민센터에만 가도 간단히 소재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기꺼이 'nowhere man'이 된다. 신용카드도 은행통장 거래도 할 수 없는 그들에게 고용주는 해고 위협을 무기로 낮은 임금과 중노동을 강요한다. 어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본 연극 《유령(I'm nowhere)》에도 남편에게 맞아 얼굴에 멍자국이 가실 날이 없다가 결국은 도망쳐 나온 배명순이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런 폭력의 배경엔 어김없이 가난과 술이 있다. 나는 마침 안온 작가의 『일인칭 가난』을 막 읽은 뒤였기에 배명순이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장면을 보는 게 평소보다 더 심란했다.


그런데 구타당한 장면을 좀 더 사실적으로 '메이크업'하자며 화장품 세트를 들고 나오는 전유경 배우 때문에 폭력의 끔찍함은 사라지고 그때부터 연극의 유희성이 도드라진다. 이른바 메타연극이다. 전유경이 이지하의 몸에 주먹질 발길질을 하던 강신구에게 "더러운 새끼. 역할을 맡아도 꼭 더러운 것만."이라고 말하고 강신구는 자기도 이런 역을 맡고 싶어서 맡은 게 아니라고 항변한다. 마침 등장한 무대감독 이승우에겐 "야, 내가 이 대사 빼자고 했냐, 안 했냐?"라고 따지기도 한다. 여기에 이 연극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숨어 있다. 전유경은 강신구에게 왜 "인간이 왜 그 모양이냐"라고 묻지 않고 '역할을 맡아도 꼭 더러운 것만'이라고 했을까.


세상은 무대이고 인간은 한낱 배우라고 했던 셰익스피어의 말은 7,8년 전 한겨레에서 무연고자를 추적한 기사를 읽고 감명받았던 고선웅 연출에게 이 연극을 구상하게 만들었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들먹이며 그래서 인생은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 라는 궤변을 설파했지만 고선웅은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자조하는 사람들에게 "선생님, 지금 이 인생은 진짜가 아니고 선생이 잠시 이 역을 맡아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말한다. 그래, 그래볼까. 과연 고선웅 연출이 하는 대로 마음먹으니 도저한 비극도 조금은 견딜 만해지는 기분이다. 연극이 주는 기쁨과 위안이다.


'각색의 달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고전을 잘 해석해 무대에 올렸던 고선웅 작가 겸 연출이 14년 만에 내놓는 창작극이라 그런지 배우, 무대미술, 음악 어느 것 하나 소홀한 게 없었고 극의 진행도 극장 무대와 시체안치실, 분장실을 종횡무진 오가며 아주 현대적인 자세를 취하고 심지어 배우들의 데드마스크로 만든 더미까지 등장한다. 배명순으로 등장해 정순임으로 살다가 다시 배명순이 되어 죽는 이지하의 삶은 눈물겹지만 "무슨 연극이 이래? 나 안 해." "연출 어딨어? 빨리 오라고 해."등의 대사를 치며 소동극을 벌일 땐 신현종, 강신구, 홍의준, 이승우, 전유경이 작정하고 벌이는 마당극처럼 흥겹고 중반 이후 김신기가 등장해 엉뚱한 소리를 남발할 땐 포복절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극중극 형태로 이야기를 꼬거나 작가가 직접 연극에 등장하는 등 '이것은 연극이여'라는 인식을 계속 상기시키는 메타연극은 단박에 가짜와 진짜,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 문제 등을 다룰 수 있는 영리한 장치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으므로 연극의 부제는 'I'm nowhere'가 된 것이다.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일하느라 진이 좀 빠진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역시 고선웅의 기개는 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길게 느껴졌던 《퉁소소리》보다 이 작품이 더 좋았다. (*사진은 서울시극단 인스타그램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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