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까워서 해지하는 게 아니라는 해명
쿠팡플레이를 해지했다.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 《동조자》를 보기 위해 가입했고(정말 잘 만든 드라마다. 박찬욱 작품답게 지적이고 유들유들하고 신랄하다). 김곡·김선 감독과 김정민 작가의 《가족계획》은 정말 재밌게 봤다(각본, 연출 모두 좋았고 배두나, 류승법 등 배우들도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얼마 전 'ER'의 막내 의사였던 노아가 주인공을 맡은(제작도 같이 한다) 의학드라마《PITT》를 시작했지만, HBO 등 보고 싶은 콘텐츠들이 아직도 너무 많지만, 결국은 그것들이 내 마음만 어지럽힐 것임을 나는 안다. 사람은 미련의 동물이다. 쿠팡플레이를 썸네일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은 길어지지만 뭐 하나 진득하게 볼 시간을 내지 못할 게 뻔하다. 앞으로 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 다른 사람은 안 그래도 되지만 나는 그래야 산다. 책을 읽을 시간을 빼앗기는 것보다 쿠팡플레이에 올라온 새로운 영화나 드라마 소식에 마음 어지럽혀지는 게 더 화가 난다.
쿠팡플레이에 들어갔다. 어디에도 해지 버튼이 보이지 않는다. 구글에 '쿠팡 해지하는 법'이라는 검색어를 넣었다. 모바일 버전 방법은 내 스마트폰애 쿠팡앱이 없어서 포기하고 PC버전 방법을 읽어 보니 쿠팡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마이 쿠팡'을 선택하고 다시 '와우 멤버십'을 해지해야 한다고 나온다. 와우 멤버십에 쿠팡 플레이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가입은 쉬워도 해약은 어려운 게 이런 서비스의 공통점이다. 나는 돈거래에 대한 속담 '빌려줄 땐 서서 빌려주지만 받을 땐 엎드려서 받는다'가 생각나서 쓰게 웃었다. 며칠 전 짐 정리하다가 첫 직장에서 내게 갈비탕 한 그릇 사 주며 빚보증을 서게 한 뒤 IMF 사태가 터지자 도망가서 1,200만 원이나 물어내게 했던 예전 회사 선배의 각서를 찢어버린 순간이 기억났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인간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쿠팡은 해지가 가능함을 알리면서도 결제일인 6월 며칠까지 시청이 가능하다고, 쿠팡에 있는 혜택들을 열거하며 이 많은 혜택을 다 포기할 거냐고, 계속 묻는다. 나는 계속 그렇다고, 이젠 그만 헤어질 결심이라고 계속 해지 버튼을 누른다. 얘는 헤어지는 마당에 상대방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여자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끈질기고 비겁하게 질척거린다.
많은 사람들이 쿠팡이 싫으면서도 할 수 없이 쿠팡플레이를 시청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보려면 다른 방법이 없고 또 값도 너무 싸다. 『쿠팡을 해지하다』를 읽고 분노했던 우리는 이제 SPL 제빵공장 직원이 기계 끼임으로 사망한 것을 알고도 파리바게트에 가고 샤니빵과 던킨도너츠를 산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거룩한 이유 때문에 쿠팡을 해지하는 건 아니다. 한 달 5천 원을 아끼려고 이 서비스를 해지하는 것도 아니다. 클릭만 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그 '가능성'과 '미련'에 시달리는 내게 갈등의 범위를 좁혀주려고 이러는 것이다. 여전히 아침이면 유튜브로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또 넷플릭스로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나 줄이면 좀 나을 것이다. 아침에 읽을 책이 있었는데 쿠팡을 해지하고 이 글을 쓰느라 시간을 다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