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시립도서관 천선란 작가 북콘서트 후기
6월 10일 화요일인 어제, ‘SF, 다른 세계로의 초대’를 주제로 한 천선란 작가 북콘서트를 보러 보령시립도서관에 갔다. 미리 참가 신청을 해놨는데 도중에 『천 개의 파랑』이 할리우드 영화사 워너브라더스와 계약을 했다고 하니 참가자들이 더 많아지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마침 그날 서울에서 손님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출판평론가 김성신 선생을 비롯한 일련의 기획자들이 '보령소행성'이라 이름 붙인 우리 집으로 처음 놀러 오는 날이었던 것이다.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 '그리고'에 가서 아욱국을 먹고 대천해수욕장으로 달려가 해변을 맨발로 걸었다. 다들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냥 헤어지기 싫어 조개구이집에도 갔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도서관을 향해 차를 몰고 갈 때는 이미 7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도서관에 도착해 아내는 차 안에서 좀 쉬기로 하고 나만 도서관 1층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천선란 작가의 강연을 듣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 누군가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천선란은 '작가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노력하면 결국 다 작가가 된다. 다만 작가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가, 이다. 계속 쓰려면 체력이 필요하니 스쿼트를 해라'라는 내용의 답을 거침없이 내놓았다. 챗GPT를 사용하느냐는 질문엔 "AI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해수면 온도가 올라간다는 말을 듣고 자제를 하고 있다'라고 하면서도 소설가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솔직하게 말해줬다. 일단 글이 안 써질 땐 챗GPT에게 푸념 섞인 질문을 해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단다. 뻔한 위로의 말이라도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쓸 소설에 필요한 특정 시대 배경 지식이나 인종에 대해, 또 그 나라 스포츠 선수들의 이름 등도 간단히 알아낼 수가 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인간은 인공지능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 예측도 내놓았다.
질문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해서 나도 질문자로 나섰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쓰다가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접고 '천 개의 파랑'을 쓰셨다는 얘기를 작가 후기에서 읽었습니다. 요즘 소설은 물론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때도 줄거리나 캐릭터보다 세계관이 더 중요하다고 하고, 실제로 콘텐츠 관계자들이 유명 SF작들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세계관을 구축해 달라는 주문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세계관에 대한 작가님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천선란 작가는 넷플릭스 등 OTT들이 세계관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이며 그게 제대로 서지 못한 채 겉모습만 베끼면 작품들이 망한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 19 이후 만들어진 작품 중 할리우드의 《인터스텔라》나 《트랜스포머》 비슷하게 기획을 했지만 컨셉을 제대로 새우지 못한 채 우주선 나오는 것만 찍다가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한 경우가 있었다. 세계관이란 결국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SF라는 장르가 기본적으로 '사고 실험'이다 보니 작품에서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고 '듄' 시리즈도 '옳은'이란 무엇인가, 를 찾아가는 영웅 서사에 다름 아니다. 천선란은 그의 소설집 『노랜드』에 수록된 단편 「옥수수밭과 형」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인데 이 경우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게 화두라고 밝혔다.
워너브라더스와 판권 계약을 하게 된 건 다양성과 동물권, 여성 등 약자에 집중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힌 천선란 작가는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보다 이야기를 잘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이야기는 잘 만들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감각을 예리하게 잡아내고 표현하는 데에는 인간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형적 이야기보다는 '이상한 주인공'을 만나고 싶은데 그런 건 챗GPT가 잘할 수 없는 분야다. 그리고 소설은 A.I가 탐내기엔 규모가 너무 작다는 농담을 하면서 웃었다. 공모전에서 대상을 탄 『천 개의 파랑』을 3주 간 자지도 먹지도 않고 폭주 기관차처럼 쓴 이야기, 어머니를 돌보며 대학 생활을 보낸 이야기 등 흥미롭고 멋진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만 줄여야겠다. 어떤 작가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엔 '왜 저럴게 많이 써?'라는 소리를 듣는 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상을 타든 영화로 만들어지든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노트북 앞에 앉아 자신과 싸우는 것뿐이라는 게 천선란의 생각이다. 북토크는 무조건 웃기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오늘 좀 많이 웃긴 것 같다고 해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강연이 다 끝나고 『천 개의 파랑』을 들고나가 사인을 받았다. 보령시립도서관에서 '필사수업'을 들었던 아름 선생, 미희 선생 등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겠다. 천선란 작가도 신춘문예를 비롯한 많은 공모전에서 정말 여러 번 낙방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고, 쉽게 잘되는 사람 없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