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맥주집에서 탄생한 불륜 앤솔러지

장강명 외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

by 편성준


이 책은 정아은 작가의 에세이 겸 작법서인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북토크에 참가하느라 모였던 장강명·차무진·소향·정명섭·정아은 작가 그리고 출판사 마름모의 고우리 대표까지 행사 뒤풀이로 간 맥주집에서 나누던 대화에서 즉흥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창작의 주제는 '불륜'이나 '금지된 섹스'였을 텐데 그러면 독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으니 좀 순화해서 '연애'로 바꾼 거겠죠. 이는 정명섭 작가의 수록 단편 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이번에도 불륜입니까?" "금지된 사랑이라는 점잖은 표현이 있죠."). 그런데 책이 완성되기 전 정아은 작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는 비극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를 구하느니 정아은 작가의 자리를 빈 곳으로 남겨 두기로 합니다. 그게 그날 밤 순수하게 기뻐하고 신기하게 합의했던 기획과 수다의 추억을 시간의 강물 위에 영원히 박제하는 길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장강명 작가의 「투란도트의 집」은 출근 전철 안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집을 읽다가 말을 트게 된 매력적인 직장 상사와 졸지에 섹파가 되어버린 스물아홉 살 남성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틈만 나면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지만 그건 성욕 해소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아주 이상한 관계의 나날들이었죠. 인생이라는 게 뭔가 똑 부러지는 것만 있는 건 아니라는 장강명 작가의 통찰이 빛나는 '연애소설'입니다.

차무진 작가의 「빛 너머로」는 재활용쓰레기장에서 주운 일체형 PC 안에서 발견한 동영상이 모티브 역할을 하는 얘기라 '혹시, 가정용 포르노?'란 생각을 했으나 이내 그 안에 담긴 슬픈 사연이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평소 판타지와 역사물, SF를 넘나드는 차무진 작가답게 이 이야기에도 수녀와 귀신 등이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강령술을 집행하는 주체가 수녀라는 게 아이러니의 정점이죠. 차무진 작가는 정아은 작가를 위한'이스터 에그'도 작품 안에 심어 두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주인공 할아버지의 큰딸 이름이 은아입니다.

이인칭 소설은 애잔하게 가슴을 후벼 파는 경우가 많은데 소향 작가의 「포틀랜드 오피스텔」도 그렇습니다. 아내가 데려 온 아이 친구의 엄마에게 사랑을 느끼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머나먼 이국땅 포틀랜드에서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드는 사랑의 사건은 그녀의 언니와 아내의 악연이 밝혀지면서 파격적 반전을 맞습니다. 이 단편은 얼마 전 드라마 제작 문의를 받았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눈 밝은 제작진이 이 아름다운 소설을 알아본 것이죠. 축하드립니다. 소향 작가님.

마지막 정명섭 작가의 「침대와 거짓말」은 남한·북한 출신의 이인조 탐정이 활약하는 미스터리 시리즈의 '파일럿' 같은 경쾌한 작품입니다. 사랑 때문에 벌어진 살인 사건인데 해결 지점에 등장한 '죄수의 딜레마' 수법은 "도둑들의 우정은 잡히기 전까지만"라는 이란의 속담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설들이 모두 끝난 후엔 네 명이 차례로 쓴 '작가의 말'이 붙어 있는데 어떤 이야기로 시작하든 한결같이 정아은 작가를 추모하며 끝을 맺습니다. 그만큼 정 작가의 빈자리가 컸다는 반증이고 이 앤솔로지에 참여한 소설가들이 얼마나 여리고 착한 사람들인지 확인할 수 있는 후기입니다. 동시에 어느 날 밤 모여 신나게 떠들고 합의했던 기획이 이렇게 실물 소설집으로 존재하게 된 것조차 그 수다맨들이 작가이기에 가능한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장강명 작가의 부인 김새섬 대표가 많이 아픕니다. 또 다른 아픔이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힘 내시라고 장 작가와 김 대표 두 분에게 (비록 제가 종교인은 아니지만) 기도하는 마음을 보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쿠팡플레이 해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