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권하는 영화 한 편, 그리고 책 두 권

《베를린 천사의 시》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by 편성준


1

빔 벤더스 감독이 극작가 피터 한트케(네, '관객 모독'의 그 피터 한트케!)와 함께 손을 잡고 만든 영화《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도서관 신이었다. 인간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다미엘과 카시엘 두 천사에게 가장 시끄러운 곳이 다름 아닌 도서관이었다는 설정. 천사들은 사람들의 속마음이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도서관에서 묵독하는 사람들의 말이 그들의 귀에 들리는 것이다.

조용한 도서관에 가면 늘 그 생각이 난다. 혹시 지금 천사 다니엘이 이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니엘은 그동안 한국어를 익혔을까. 아니면 '헤어질 결심'의 서래처럼 번역 어플을 쓰고 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듣고 있을까.


2

보후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제목도 이런 발상에서 나왔을 것이다. 1960년대 체코 프라하에서 책들을 압축기에 넣어 폐지로 만들어버리며 사는 주인공 한탸. 그는 35년째 쥐와 악취가 들끓는 지하실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압살하는 사람이지만 그 과정에서 지식을 쌓고 주옥 같은 명언들을 건져 올리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인생을 산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그런데 밀려드는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책의 등짝이 빛을 뿜어낼 때도 있다. 공장 지대를 흐르는 혼탁한 강물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물고기 같달까. 나는 부신 눈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그 책을 건져 앞치마로 닦는다. 그런 다음 책을 펼쳐 글의 향기를 들이마신 후 첫 문장에 시선을 박고 호메로스풍의 예언을 읽듯 문장을 읽는다."

얇은 책이다. 죽기 전에 한 번은 읽기를 권하고 싶을 만큼 좋다.

3

어제 보령시립도서관의 '장르문학읽기' 모임에서 배명훈 작가의 소설 『화성과 나』를 추천했다. 배명훈은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SF 작가인데 그 덕분인지 외교부로부터 "화성의 행성정치: 인류정착 시기 화성 거버넌스 시스템의 형성에 관한 장기 우주 전략 연구"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는 프로젝트가 끝나갈 때 보고서와 함께 이 연작소설도 썼다. 배명훈다운 일이다. 나는 토마스 홉스가 던진 '힘 약한 사람도 여럿이 공모해서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는 명제를 거론하며 그 때문에 국가를 만들고 사회계약들이 생겨난 것이라 말하는 지요와 희나의 대화가 재밌었다. SF에서 이런 인문학적 요설이 가능하다니, 배명훈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그는 어떤 소재든 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끌고 갈 줄 안다.

아, 내 책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에도 이 소설에서 인용한 문장이 있다. 바로 이 문장이다.

"아무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회는 안전하긴 해도 건강하지는 않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훈련된 사람은 타인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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