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원작 소설 같은 신기한 이야기

소향 작가의 『화원귀 문구』

by 편성준


'소설가 50인이 뽑은 소설'이라는 타이틀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사서 읽었다. 가독성 좋고 필력 좋다는 평이 지배적이므로 딴지를 거는 심정으로 말해 본다면 우선 이렇게 엄마 없이 아빠와 단 둘이 사는 여고생일 경우 아빠는 좀 어리숙한 호인이고 딸은 똑 소리 나게 똑똑한 설정이 많은데 이 작품도 너무 그 공식에 딱 들어맞는 것 같아서 좀 불만이었다. 게다가 아빠가 문방구를 차리고 나서 갑자기 출장을 가는 바람에 딸인 단비가 무인 문구점 운영을 맡게 되고 그럼으로써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보류자 '허현'을 만나게 되는데, 결정적으로 아빠가 어느 나라로 출장을 가는지 나와 있지 않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건 매우 중요하다. 그냥 '해외 출장'이라고 한 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사소한 것이라도 구체적인 정보를 명시해야 다 진짜 있었던 이야기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시비 거는 건 여기까지.


『화원귀 문구』는 소향 작가의 첫 장편인데 이 소설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진 스토리작가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다. 즉, 스토리텔링이 무척 뛰어나다는 증거다. 왜 아니겠는가. 157년 전에 죽은(아주 죽은 건 아니고 보류자 신분인) 화공이 마침 문을 연 문구점에서 여고생에게 아르바이트생으로 발탁되어 계약서를 쓰고 백일 동안 자신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단짝 친구 하은과 단비를 좋아하는 환희, 그리고 단비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장우주의 숨은 사연까지 겹쳐 청소년기의 삶과 고민은 물론 삶과 죽음, 심지어 신분사회의 모순까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마치 넷플릭스에서 기획한 판타지 로맨스 6부작 드라마 시놉시스 같지 않은가. 이건 SF와 영어덜트 단편으로 필력을 닦아 온 소향 작가이기에 가능한 소설이다. 부럽다. 방송국에서 드라마 검토 제안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디 아빠의 출장지가 어디인지 보강되어 더 재밌고 귀여운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다. 나 쪼잔하다. 나는 정말로 당비 아빠의 해외 출장지가 궁금하......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거는 리뷰라니. 아무튼 청소년 톤의 소설이지만 마지막 헤어짐을 다루는 장면에서는 어머니가 죽기 전에 작성한 '단비 다이어리'가 소환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성숙한 통찰이 돋보인다. 소향 작가의 다른 작품을 또 읽어봐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필사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필사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