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필사책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 익산북토크 후기

by 편성준

장마의 시작되었는지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군요. 이런 날 제 운전실력으로 보령에서 익산까지 차를 몰고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시간을 넉넉히 잡고 익산의 커피숍 '커피여행'으로 갔습니다. 아니, 사실은 이 북토크를 주관한 오선진 아나운서가 이른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커피숍 근처 동막골시래기마을'에 가서 저녁부터 먹었습니다. 오선진 아나운서 부부와 전주에서 온 이채선 선생 등과 함께 시래기국을 먹고 커피여행으로 갔더니 벌써 많은 분들이 모여서 제 책 '나를 살린 문장, 내가 살린 문장'을 펼쳐 놓고 읽기도 하고 메모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고산에서 책방 ‘여우숲’을 운영하는 최현화 대표가 제 책을 여러 권 진열해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분은 익산에서 유명한 영어학원 원장님이기도 하더군요. 저는 오늘 오신 분들께 드릴 선물로 김태균 작가의 『같이 밥 먹고 싶은 아저씨 되는 법』과 이화경 소설가의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를 각각 한 권씩 가져왔다고 했더니 반가워하며 입구에 그 책들을 잠깐 진열하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모여 저와 오선진 아나운서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오 아나운서의 소개에 이어 제가 준비해 간 PPT를 열고 왜 필사책을 쓰게 되었는지, 어떤 문장들을 모았는지, 제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나 생각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미니 특강을 했습니다. 대못이나 볼펜처럼 생활에서 마주친 물건들을 메타포 삼아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쓰는 법도 얘기했습니다. 관객들의 호응이 컸고 웃음소리와 고개 끄덕이는 횟수가 점점 늘었습니다.


웃기는 건 '필사책이라는 걸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 고백한 분들 많았다는 점입니다. 서호식 선생은 커피향기에 와 책을 펼쳐보니 여백이 많아서 '잘못 왔구나'하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30~40페이지 정도 휘리릭 읽어보니 책이 재미있더라는 것입니다. 선생은 특히 켄트 하루프의 소설 『밤에 우리 영혼은』 중 옆집 할머니가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참 신기하고 따뜻해서 인상 깊었다고 합니다. 이런 구절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시인인 손금규 선생도 필사책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좀 다른 것 같다고 하면서 『백석평전』에서 제가 인용한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아이들처럼 오늘의 삶을 즐기자'라는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온 노랑이라는 분은 자신은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잘 못 읽는데 남편은 잘 읽어 질투가 난다고 해서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익산예쁜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박효원 님은 제 브런치 글 중 '글쓰기가 창조의 불꽃( creative sparks)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익산 출신이지만 지금 임실에 살고 있는 유혜진 님은 독서클럽 <쓰기의 책장>에서 제 책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회원들과 함께 읽었던 기억과 함께 뒤늦게 제가 그걸 알고 줌으로 인사를 했던 추억을 되새겨 주셨습니다. 고맙고 과분한 일이죠.


신문에 시사 칼럼을 4년이나 쓴 최민경 선생, KBS에서 일하는 최수진 작가, 임형택 의원, 최현아 대표 등과도 질문과 대답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회를 맡아 준 오선진 아나운서는 "수많은 필사책을 봤지만 이 책은 다르다"면서 장강명 작가가 쓴 '젊었을 때의 영민함만 믿고 버티다가 삶이 얄팍해지는 중년' 이야기가 뜨끔했다고 개인적인 소회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어제 북토크는 아내와 함께 갔는데 마침 아내의 생일이기도 해서 더 뜻깊고 흐뭇했습니다. 밤 운전을 해서 보령으로 갈 자신이 없어서 가까운 곳에 모텔을 잡고 오선진 아나운서, 최수진 작가 등 5~6명과 함께 맥주를 마시다가 헤어졌습니다. 빗속을 뚫고 달려간 북토크였지만 분위기나 관객 반응도 좋았고 저도 마음속 이야기들을 많이 쏟아내서 좋았던 행사였습니다. 저희는 오늘 아침 11시부터 경복궁역에서 시작되는 독서클럽 '독하다 토요일'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보령으로 갔다가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초인적으로 바쁘고 졸리기도 하지만 어제의 흐뭇함과 고마움이 피곤함을 이기고 있습니다. 지금 대흥동의 카페에서 강종희 선생을 기다리며 이 북토크 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약속 시간 5분 전이군요. 이제 그만 써야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베스트셀러 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