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사람들이 멀쩡한 척하고 사는 세상

김도훈의 『나의 충동구매 연대기』리뷰

by 편성준


속옷 브랜드를 개발해 청년 사업가로 거듭났던 한 개그맨이 사업아이템으로 하필 속옷을 택했던 이유를 들은 적이 있다. 여성과 처음 잠자리를 갖던 날 밤 입고 있던 팬티가 너무 남루해서 창피했다는 것이다. 라디오에서 그 얘기를 듣으며 웃었다. 아, 순간의 창피함이나 무안함도 아이디어의 재료가 될 수 있구나. 이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김도훈의 책에도 나온다. 사귀던 이성과 처음으로 잠자리를 갖던 날 김도훈은 형광등의 아우라가 빛나던 그녀의 집에서 '불을 끄자니 아무것도 안 보이고, 켜놓자니 무드가 안 생기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플로어 램프를 강박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다. 이케아에서도 사고 프리츠한센에서도 산다. 그는 귀가하는 순간 어둠을 헤치고 돌아다니며 거실과 방에 놓여 있는 램프를 하나씩 켠다. 그 귀찮은 일을 매일 하는 건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형광등 사용을 강권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조명들과 함께라면 집으로 찾아온 모든 연애 상대들의 얼굴과 몸이 훨씬 예뻐 보이는 장점이 있습니다'라는 말은 차마 못 하지만 말이다.


맥시밀리스트인 김도훈은 기본적으로 집안에 물건들을 늘어놓아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다.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테이블 위에 쌀주머니와 방울만 놓으면 점집이라는 소리를 듣더니 결국은 '애오개 박수무당집’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하지만 물건만 많은 게 아니다. 그는 취미 부자다. 영화잡지사도 다니고 남성 패션지에도 다녔으니 영화나 음악, 옷 취미는 물론이고 책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넘치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책의 뒷부분에 '추천 SF문학 10권'이 부록처럼 붙어 있는데 추천 목록의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과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에게 내준 것만으로도 믿음이 간다.

게다가 문장들이 너무 재미지다. 전직 에디터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게 행정학과를 졸업한 김도훈은 행정학원론 수업 시간에도 SF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다가 시험 답안지엔 온갖 영화와 문학 속 주인공 이야기를 끌어와 단편소설 같은 글을 작성하고도 A학점을 받은 문장력을 자랑한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어쩌면 나는 허황된 글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한 사람들이 멀쩡한 척하고 사는 세상이다. 그 이상한 사람들 무리 속에 김도훈이라는 작가가 숨어 있다. 그가 자신의 이상함을 한껏 치장해 정상인인 것처럼 꾸며 놓은 게 '나의 충동구매 연대기'라는 책의 실체다. 그러니 읽을 때 조심해야 한다. 나도 하마터면 속을 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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