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보다 나은 노숙인을 만드는 인문학 특강

최준영의 『가난할 권리』

by 편성준


최준영의 별명은 '최좌절'이었다.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해 검정고시로 대학을 갔고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하려다 영화 제작에 손을 대 쫄딱 망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최좌절이나 최결핍으로 불리던 최준영은 우연한 기회에 노숙인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한 뒤로 '거지 교수'로 불렸다. 노숙인들과 크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혹시 박주민 의원?) 별로 기분 좋은 별명은 아니었다. 딸이 "아빠 별명은 왜 거지 교수야?"라고 묻자 그는 이숙영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얘기를 했고 이숙영 아나운서는 청취자들이라는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려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새 별명을 지어 주었다.


그렇다. 최준영은 노숙인을 앞에 두고 강연을 한 이후 미혼모와 한부모 여성 가장, 교도소 수형자, 가난한 어르신, 장애인 들에게 인문학 강연을 20여 년째 하고 있는 거리의 인문학자다. 노숙인들이라고 생각이 없을까. 다만 가난하고 처지가 안 좋아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던 기억을 잊어버리고 살아갈 뿐이다. 최준영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오는 니체의 말 '삶의 의미를 알면 어떤 상황(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라는 구절을 굳게 믿고 그들에게 인문학을 전도한다. 인문학이 도대체 뭔가. 어르신, 신호등 지키는 것, 그게 민주주의예요. 서로 욕하고 싸우지 말고 좋은 말로 대화하는 것, 그게 인문학이에요. 치아가 없어 씹지 못하는 사람에겐 부드러운 미음이나 죽을 줘야 하듯 삶에 지친 사람들에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최준영이 2019년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을 설립한 이유도 어떡하면 더 많은 인문학자들을 거리로 파견할 수 있을까 하는 궁리의 결과였다.


최준영이 생각하는 인문학은 돈 없이도 부자로 사는 방법이다. 돈은 없을지라도 마음만은 부자인 사람들이 있다. 성장 이데올로기는 국민을 국가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다. 개조의 대상이거나 소모적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세상엔 돈을 욕망할 권리만 있는 게 아니다. 자발적으로 가난할 권리도 있다. 노숙인으로 살다가 인문학 수업을 들은 뒤 아내에게 하던 거짓말을 멈추고 전화로 사랑한다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는 교육생의 이야기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인문학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자신을 일으켜 세워 주고 밥도 주고 무엇보다 생각이라는 걸 하게 해 준 고마운 선물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집을 나올 때 어렸던 딸이 직장인이 되어 몇 년 동안 아빠를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그를 만나 '나 곧 결혼하니까 빨리 돌아와 신부 입장할 때 옆에서 팔짱 껴 달라'라고 말하는 사연은 또 어떠한가. 수업 시간에 쌍욕을 하는 교욱생이 있길래 왜 그런는지 이유를 들어보니 기가 막힌다. 학교 폭력을 당한 아이 얘기를 어렵게 학교 선생에게 했더니 "별 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교실에서 "개XX, 나쁜 XX"라고 함께 욕을 해주는 장면은 찡하다. 이 책에는 '울음바다'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만큼 인문학이 주는 공감의 깊이와 깨달음의 환희가 남다르다는 증거일 것이다.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 살아가려면 회복탄력성이 있어야 하는데 회복탄력성의 의 핵심적 요인은 '인간관계'였다. 청소년에겐 그 아이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주고 받아 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어야 하고, 어른에게도 너는 세상을 살아갈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깨닫게 해주는 동반자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 신형철 평론가는 추천사에서 "거리에선 인문학이 작고, 인문학엔 거리가 적다. 최준영이 '거라의 인문학자라면, 이 책은 '인문학자의 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나도 올해부터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가난한 사람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운영하는 최준영 대표를 따라 글쓰기 강연을 하기로 했다. 아직 노숙인들 앞인지 교도소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장소가 무슨 상관이랴. 일단 강사료가 적지 않다는 달콤한 말로 순진한 나를 꼬셨고 무엇보다 대학교수보다 나은 노숙인을 만드는 인문학 특강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릴 기회인데 그걸 내 주제에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내 말에 조금이라도 동의하신다면 우선 이 책 『가난할 권리』 를 두 권 사시기 바란다. 한 권 사서 읽고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고 나면 반드시 다시 읽고 싶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랑 친구가 될 수 있지."라고 썼다. 나는 이 책이 그렇다. 어서 인문학의 거리로 들어서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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