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과거를 직시하는 연극

극단 신세계의 연극 - 《하미 2025》

by 편성준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나 선배들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과거를 반성할 줄 안다. 연극 《하미 2025》는 1960년대~70년대 월남으로 파병되었던 우리 군인들이 저지른 양민학살의 참상과 그 후유증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하미는 베트남 다낭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1968년 한국의 청룡부대는 여기에 와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애 어른 가리지 않고 잔인하게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것도 모자라 시체들을 탱크 바퀴로 밀어버렸다. 그 마을 사람들이 지금도 한국사람이라면 치를 떠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의 사과 한 번 없었고 우리나라 사란들은 과거를 숨기기에만 급급한다.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어 과거의 잘못을 밝히고 늦었지만 비극의 주인공들에게 사과하려는 세력이 있다. 연극은 베트남 '평화여행단'이 다낭 하미마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방문하고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하고 생존 피해자들애게 사과하는 과정을 '다크투어' 형식으로 극화해서 보여준다.


극단 신세계답게 사전 준비와 스터디를 오랫동안 했고 배우들의 연기에도 힘이 넘친다. 한지혜 고민지 김민선 김보경 등 여성 배우들의 활약이 대단한데 특히 한지혜 배우는 그 많은 베트남어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웠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120분이었던 러닝타임이 130분으로 늘었고 또 극 중 다큐멘터리 작가나 쵤영팀이 '옳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살짝 교조적이기도 한데 다행히 거기까지 와서 정치인다운 쇼비니즘을 선보이는 국회의원 역의 강진휘 배우나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오버'하는 참전용사 역의 성노진 배우,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장우영 배우 때문에 웃음보가 터진다. 운전사, 안내원, 베트남 피해자 대표, 공안 경찰, 버스 기사 역할 등 거의 모든 장면에서 각각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하재성 배우의 능청은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연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감초 역할을 한다.


희생자 위령비 훼손 사건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뒤 한국으로 돌아가며 마무리되는 이 연극은 커튼콜 대신 비문이 한 줄 한 줄 자막으로 소개되고 마침내 그걸 연꽃 그림으로 덮어버린 위령비 사진으로 조용히 막을 내린다. 객석을 나서며 아프고 힘들지만 이런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에게 미래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창작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 힘든 작업의 전면에 나서서 작·연출을 책임진 김수정 작가 겸 연출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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