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학수 시인 1주기 추모기념행사 후기
새로 이사 온 보령 대천동 뒷산에 안학수 시인의 무덤이 있습니다. 제가 산책이나 하려고 뒷산 길 올라가다가 발견했죠. 사실은 보령 와서 처음 만난 김환영 화백 때문에 안학수 시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제 그의 1주기 추모기념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무덤에서 행해진 추모 행사에서 안 시인의 부인인 소설가 서순희 선생을 비롯한 많은 문인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디딤돌인문학' 강사 모임에서 먼저 얼굴을 익힌 이강산·이정록 시인, 그리고 이정모 관장님 보령 강연 때 만났던 황선만 작가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드렸고요. '낙지네 개흙 잔치'라는 동시를 다 같이 낭독하고 행사를 마쳤습니다.
이어 원도심어울림센터에서 진행된 추모식에서는 이오우 시인의 개회사에 이어 전진영 작가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뒤늦게 동시 작가가 되고 싶어 대한민국에 있는 동시집을 거의 다 읽었노라 자부하는 전 작가는 안학수 시인의 첫 시집 『박하사탕 한 봉지』를 읽고 '시가 왜 이렇게 거칠어?'라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혼자 노는 아이'나 '새엄마' 같은 시를 읽으면서 안 시인이 제대로 양육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자신도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았던 아픈 현실 속에서도 안 시인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은 동시를 쓰고 있었던 것이죠. 전 작가가 편지봉투에 넣어 온 시들을 하나씩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도 한 편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정진채 가수가 기타를 메고 나와 안학수 시인의 동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 '시곗소리' 등을 직접 들려주었고 이어 이정록 시인이 나와 안학수 시인의 유고 시집 발간의 진척 상황을 보고 했습니다. 안 시인의 호가 봉갑이라는 걸 설명하면서 "봉우리 봉 자에 갑을병정 할 때의 그 갑이유."하고 충청도 사투리를 쓰니 정겨웠습니다. 이어 김환영 작가가 판화로 그림을 넣기로 했다고 말하고 '표 4'에 들어갈 자신의 글을 슬쩍 읽어 주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명문이라서요. 특히 마지막 줄 '부럽다고 일찍 가지는 맙시다'는 구절은 살짝 눈물겨웠죠.
박상분 시인, 박경희 시인, 소중애 작가 등이 나와 시를 낭독하고 고인과의 추억을 얘기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냉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제 들은 안학수 시인과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은 '레이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더군요. 그 분들 얘기의 공통점은 안학수 시인이 항상 웃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웃지 않는 사진이 한 장도 없더랍니다. 제가 모르고 있던 사람들, 세상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시인은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들은 남은 이들의 가슴에 살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박남준 시인이 나와 '모악산장'에 얽힌 이야기를 이정록, 이강산 시인과 함께 했고 김정헌 충남아동문학회 사무국장님이 나와 들려준 얘기는 어찌나 웃기던지 다들 배꼽을 잡고 웃어야 했습니다.
저녁 식사 겸 술자리가 벌어진 '황금코다리 보령점'과 3차 장소 '섬마을 이야기'에서 동물병원 김상옥 원장님도 오고 중부발전 김종성 선생도 와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마시고 떠들었습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 첫 구절에 나오는 짓을 다 해봐도 전혀 지치지 않는 분들이라 매우 힘들었습니다. 저도 김종선 선생의 꾐에 빠져 노래를 한 곡 부르는 주책을 부렸고요. 서울 갔던 제 아내 윤혜자가 뒤늦게 섬마을 이야기로 왔다가 저를 구출하기는커녕 같이 앉아서 1시 반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집에 오니 새벽 두 시더군요. 아, 이 분들 조심해야겠어요. 힘이 너무 좋아요. 충남 사람들 기운이 너무 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