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령 생활

일요일 아침

아내가 없는 일요일 아침은 괜히 바쁘다

by 편성준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물을 한 잔 마시고 반갑게 다가오는 고양이 순자의 엉덩이를 두들기고 얼굴을 만지고 눈곱을 떼준 일요일 아침이다.


미지근한 물에 캐비초크를 잘 저어 한 컵 마시고 TV를 켤까 하다가 어제 산 정영수 작가의 소설집을 꺼내 한 편을 읽다가 토마토를 칼로 자른 뒤 소금과 후추와 올리브오일을 뿌려서 먹은 일요일 아침이다.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최준영 교수가 대전평화방송에서 했던 인터뷰 영상을 끝까지 다 듣고, 인문학이 뭔지, 나는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 강사로서 앞으로 어떻게 강연을 해야 할지 다시 고민해 보는 일요일 아침이다.


보령으로 오는 아내에게 "지금 버스 타러 가는 길이겠네. 조심해서 와, 사랑해."라고 메시지를 쓰고 답장을 받지 못한 일요일 아침이다.


책을 읽다가 브런치에 들어가 '부소유'라는 이름의 작가의 글을 읽고 거기 차무진, 소향, 정명섭 작가의 북토크 후기가 있길래 반갑다고, 나도 그분들과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고 댓글을 쓰고 나오는 일요일 아침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Sunday morning'이라는 곡은 일요일 아침 햇살이 느껴지는 나른하고 게으른 곡인데, 나의 일요일 아침은 왜 이렇게 바쁜가 생각해 보는 일요일 아침이다.


어젯밤 정치 유튜브를 보며 족발에 화요를 한 병 마셨는데(앤마트에서 파는 알루미늄 진공 비닐 포장 족발, 잘 잘라지지 않아서 먹는 게 힘들었어요. 손에 돼지기름이 다 묻어요) 오전에 아내가 와서 집안이 지저분하다고 야단을 칠 수 있으므로 슬슬 청소를 하고 술병이나 안주 찌꺼기도 치워야지, 생각해 보는 일요일 아침이다.


그래도 읽는 게 남는 거지, 하고 다시 소설책으로 달려가 '서촌그책방' 하 대표님이 추천한 정영수 작가의 소설을 천천히 읽어보자, 다짐하는 일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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