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세상에는 세 가지 작가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써야 하는데......' 하고 걱정만 하는 작가. 두 번째는 "내가 안 써서 그렇지 쓰기만 하면 쟤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는데 말이야"라고 시니컬하게 남을 헐뜯어서 자신의 무능을 감추는 작가. 세 번째는 늘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줄기차게 원고도 쓰는 작가. 장강명은 세 번째 범주의 작가다. 데뷔작 『표백』부터 '앞으로 장강명의 세상이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들었던 그는 이후 소설과 에세이, SF, 르포, 유튜브, 라디오, 앤솔로지 등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활동했고 드디어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한 화두인 'AI'에 대한 논픽션을 발간했다. 나오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은 올해 최고의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하고 있는데 나도 그 의견에 한 표를 더한다.
장강명이 하필 바둑 기사들을 인터뷰한 것은 바둑계가 AI를 가장 먼저, 그리고 지금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둑 기사들이 받은 충격과 대처법을 잘 분석해서 문학에 대입해 보면 미래애도 소설가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인터뷰와 자료 조사에 나선 것이다. 바둑은 체스나 장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도의 기억력과 승부욕을 요하는 게임이다. 프로 기사들은 수백 수에 달하는 착점들은 별 어려움 없이 순서대로 기억한다. 기보를 '스토리'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류 기사들은 바둑판 없이 허공에도 완벽하게 복기를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2016년 이세돌 9단이 구글에서 만든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4대 1로 진 후부터 세상은, 특히 바둑은 달라졌다. 이제는 AI를 안 쓰는 기사가 없다.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수를 보고 승패를 예측해 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선배 기사들이 얘기했던 '기풍'이나 '기세' '철학' 같은 애매한 가르침은 발을 붙일 곳이 없다. 기사의 실력 차이가 가장 벌어지는 곳이 초반 포석이었다. 그런데 AI가 등장해서 초반 포석의 규칙도 뒤집어 버렸다. 하루 10시간씩 노력해야 할 수 있었던 능력을 기계가 빼앗아 갔다고 여기고 은퇴를 선언한 기사가 있는가 하면 AI가 왜 그런 결과를 내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퍼포먼스가 워낙 뛰어나니까 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사들도 있다.
분명한 건 인공지능을 쓸 거냐 말 거냐, 라는 질문은 이제 '피처폰을 쓸 거냐 스마트폰을 쓸 거냐'라고 묻는 것만큼이나 뻔하고 의미도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까 봐 근심했다면("AI가 소설가보다 소설을 더 잘 쓰면 어떡하지?") 이제는 어차피 경쟁은 기계가 아닌 사람과 하는 거니까(오정아 5단) 내가 AI를 더 습득해서 저 사람을 이겨야지, 하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장강명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발 빠른 플레이어들(작가, 편집자, 출판사)은 인공지능을 먼저 이용할 테고 그렇게 해서 상대보다 우월한 위치에 오를 건 뻔한 일이다. 우리에겐 이미 선택권이 없다.
장강명은 AI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에서 그치지 않고 그동안 기계문명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찬찬히 고찰하고 빅테크 기업들의 '막대한 권력'을 경계한다. 어려운 건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은 여가시간을 즐기게 될 것이라는 게 그동안 발명가와 사업가들의 호언장담이었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간혹 자동차 이전에 말을 타고 다닐 때가 좋았다고 하거나 인터넷 없던 시절이 더 평온하고 인간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기술을 역행해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은 없다. 절대 없다.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핵물리학과 양자역학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쓰이거나 드론이 살인 기계가 되면 안 될 텐데, 하는 염려도 반드시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미래는 결국 AI에게 종속되고 말 것인가.
인공지능은 빠르고 정확하긴 하지만 서사의 주인공이 될 순 없다. 폴 포츠의 노래 실력은 '아주 잘 부르는 아마추어' 수준이라지만 사람들은 어눌한 휴대폰 판매원이었던 그의 스토리에 감동했고 그가 출연했던《브리튼스 갓 탤런트》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억 9천7백만 회를 넘기는 대 스타가 되었다. AI에게 판사 일을 맡기면 정확하긴 해도 튀는 판결은 전혀 없는 아주 안정적인 재판만 할 것 같다. AI경영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게 예측 가능한 세상은 재미없어한다. 적당한 역경이 있고 그걸 넘어서거나 히다 못해 재미라는 '인센티브'라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걸 통틀어 '의미'라고 부른다.
장강명은 9부와 10부에서 미래 예측의 대명사격인 소설 『멋진 신세계』와 『1984』를 비교·분석하다가 결국 조지 오웰의 손을 들어준다. 1984년 1월 1일 백남준이 비디오쇼로 조지 오웰의 '기우'를 비웃었지만 오웰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웰 덕분에 인류는 '1984'라는 디스토피아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장강명은 '기술이 가치를 이끄는 게 아니라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당부한다. 이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과도 비슷하다. 어렵더라도 우리가 미래를 정할 수 있다는 마음과 믿음이 우리를 지탱할 것이다.
『먼저 온 미래』를 읽으면 알게 되는 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더구나 장강명은 글을 아주 잘 쓴다. 어떤 사람은 8부까지와 달리 9부와 10에서 틀린 얘기도 많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장강명은 이 책을 통해 거대한 질문을 던졌고 바둑계를 비빌 언덕으로 삼아 집요한 통찰을 전개했으며 마지막엔 조지 오웰에 기대어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피력했다. 쓰다 보니 글이 좀 길어졌지만, 나는 그래도 이 책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는 순간 책의 가치가 그만큼 작아진다고 믿는다. 부디 직접 한 줄 한 줄 장강명의 글과 사유를 만끽하며 읽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