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령 생활

낫 가지러 가신 할머니

실없는 부부의 농담들

by 편성준


보령 우리 집은 주방 창문을 통해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담장이 낮아서 지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들도 주방에 서 있는 아내와 나를 볼 수 있다. 오늘 아침 우리 집 옆의 옆집에 사시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지나가시는 걸 보며 내가 말했다. "아이고, 할머니 어딜 가시나....."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노인쉼터 가시겠지."

그런데 조금 있다가 할머니가 다시 길을 되짚어 집으로 가시는 게 아닌가. 저 할머니 왜 다시 오시는 걸까?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혼잣말처럼 물었다. 뭐 잊어버린 게 있나 보지. 아내가 대답했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 내가 저년을 죽여야 되는데 깜빡 잊고 칼을 안 갖고 왔네, 하고 다시 돌아가는 걸 지도 몰라!" 그러자 아내도 웃으며 대답했다. "낫! 시골에서는 칼보다 낫이 어울리지."


우리는 죄 없는 할머니를 물고 늘어지며 낄낄댔다.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 살던 성질 급한 사람 이야기가 생각났다. 성질이 급해서 말까지 심하게 더듬던 그 남자가 하루는 당장 누굴 찔러 죽이겠다며 낫을 들고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다시 대문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길래 왜 돌아왔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굴 주, 죽여야 할지 까먹었어."

당장 화 나는 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일 때가 많다. 나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섭섭하게 군 사람들도 빨리 잊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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