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타인의 평가에 무심할 수 있는가?

연상호의 <얼굴>

by 편성준

음악엔 천재였지만 날 때부터 눈이 안 보였던 스티비 원더는 '색을 상상할 수 있다'라고 어디선가 밝힌 적이 있다. 연상호의 영화 <얼굴>은 스티비 원더처럼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의 인생에 들어온 한 여성과 그들 주변에서 만들어내는 믿음과 의심의 쌍곡선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어제 극장에서 보았는데 작은 이야기지만 몰입감과 여운이 장난 아니었다. 연상호 감독은 제작비 2억 원에 이 영화를 찍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건 노개런티로 출연한 박정민 배우의 열의 덕분이었다. 박정민 말고도 권해효, 임성재, 신현빈의 열연이 돋보인다. 2018년 연상호가 쓰고 그린 동명 그래픽노블이 원작인데, 투자자가 없으니까 중간에 보여줄 데도 없고 해서 자유롭게 찍었다고 한다.


유골 발견만으로 간단히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아이디어가 좋았고 사장이 메고 다니는 카메라가 마지막 반전에 쓰인 점도 납득이 갔다. 청계천 피복공장이 나오고 성폭력 문제도 등장하지만 영화가 추구하는 메시지에 사회나 시대가 담긴 건 아니다. 연상호의 관심은 그보다 더 본질적인 미와 추, 의심과 가치판단의 문제 등이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질투와 의심 때문에 몰락하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고 때로는 남의 말 때문에 망하기도 한다. 마지막 사진 장면에서는 영화의 제목 '얼굴'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이렇게 진지하고 몰입감이 필요한 영화야말로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OTT로 풀렸을 때 보면 특유의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해 영화의 진가를 놓칠 것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극장에서 보시라. 연기나 연출의 품질은 보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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