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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성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다

전유성 선생을 추억하며

by 편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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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세상을 떠난 전유성 선생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SNS에 넘치고 있다. 가수 이문세 씨는 자신을 방송 데뷔시켜 주었던 분이라고 고백했고, 양희은 선생은 1970년 '청개구리'에서 첫 무대를 본 사이이며 이후 55년을 지켜본 사이라고 했다. 소설가 김탁환 선생은 친하게 지내는 개그맨 남희석의 소개로 어느 주점에서 전유성 선생을 만났는데 방송 얘기 대신 최근 읽은 시인들의 시집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개그맨이 아니라 동료 문인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회상은 김형민 PD의 '새우깡 에피소드'다. 전유성 선생이 출연했던 한 프로그램의 AD(조연출)였던 김형민이 녹화 현장에서 선배 PD에게 민망할 정도로 신나게 깨지고 있었는데 전유성 선생이 갑자기 "아차차!"하고 일어나더니 “저기, 잠깐 조연출 좀 빌려 줘요.”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선배가 무슨 뜻이냐고 쳐다보자 “일본에서 뭘 가지고 온 게 있는데..... 매니저가 이리로 갖고 오기로 했거든. 여기 MC 하고 패널들하고 연출진 좀 나눠 주려고. 조연출 좀 빌려 줘.” 그러더니 김형민을 데리고 주차장이 아닌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새우깡 스무 봉지와 음료수를 사더란다. 일본에서 뭐 가지고 오셨다더니 웬 새우깡을 사냐고 묻자 그는 “이 새우깡, 일본에도 똑같은 게 있거든. 이게 일본에서 온 거지 뭐야. 아, 오늘 이게 먹고 싶어 가지고.” 그리고 이어지는 본심은 이랬다. "새우처럼 등이 휘도록 욕먹는 거 보니까 새우깡이 먹고 싶어지더라고.” 그러고는 녹화장으로 가서 새우깡 스무 봉지로 난데없는 새우깡 파티를 하면서 전유성 선생은 한국의 과자와 일본 과자의 유사점과 그 맛의 차이와 공통점에 대해 유려하게 썰을 풀었다. 전유성은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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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유성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생 시절 광고회사 다니던 선배였나 이벤트회사 하는 선배였나, 아무튼 홍대 뚜라미 선배 덕분에 행사 스태프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진로에서 만든 '라세느'라는 샴페인의 프로모션으로 기억한다. 상품 런칭을 알리고 사이사이 뮤지션들이 나와 연주와 노래를 선보이는 행사였는데 진행자가 전유성이었다. 일찍 도착한 그는 대기실에 앉아 혼자 위스키를 마셨다. 저렇게 마셔도 되나 싶은 정도로 계속 술을 마시고 있다가 행사 1분 전이 되자 매니저가 와이셔츠를 가지고 와서 그에게 입혔다. 입히는 사람이나 입는 사람이나 늘 그러던 것처럼 서로 익숙한 동작이었다. 술배를 와이셔츠와 슈트로 가리고 멀쩡한 얼굴이 된 그는 무대에 오르더니 "아이고, 전유성입니다. 오늘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날씨가 안 좋다고요? 아니, 날씨가 안 좋은 걸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에요?"라며 익살을 떨기 시작했다. 박학기였나 장필순이었나, 첫 번째 뮤지션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동안 전유성은 대기실 의자에 앉은 채 코를 골고 잤다. 저러다 큰일 나지 싶었는데 노래가 끝나기 삼십 초쯤 전에 눈을 번쩍 뜨더니 나가서 또 진행을 했다. 행사 내내 술에 취해 자다가 노래가 끝날 때쯤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끝날 때까지 완벽하게 진행을 했다. 전유성은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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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살 때 전유성 선생이 갑자기 전화를 했다. 지금 성북동에 왔는데 한옥집에 잠깐 놀러 가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오시라고 했더니 5분도 안 되어 우리 집으로 오셨다. 아내가 차를 내고 과일을 깎는 동안 전유성 선생은 내 책과 글 얘기를 했다. 나도 예전에 전유성 선생의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와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등을 찾아 읽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예전에 여행지에서 우연히 들은 전유성 선생인 진행하는 라디오 독서 프로그램 얘기도 했다. 당시 이기호 작가였나 구효서 작가였나의 작품을 다루고 있었는데 문학평론가 뺨치는 깊이와 지식이 있었다. 당대의 문인들 작품을 다 찾아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지금 찾아보니 프로그램 제목이 《책마을 산책》이다). 내가 그때 그걸 듣고 놀란 얘기를 하니 전유성 선생은 "어느 프로그램에 나가서 문학작품 얘기를 잠깐 했더니 PD가 놀라서 나하고 문학 프로그램 하나 같이 하자, 그래서 하게 됐어."라고 대답했다.

신문에 썼던 전유성 선생의 글 중 지금도 기억에 남는 얘기가 하나 있다. 후배와 이대 앞을 지나는데 더 이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아저씨를 보고 화들짝 반가워하며 다가간 후배가 그 남자에게 몇 마디 하더니 뺨을 철썩 맞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뭐라고 했길래 뺨을 맞고 오냐고 물었다니 후배 왈, "저 아저씨가 하도 초라하게 서 있길래 가서 선생님, 선생님은 어렸을 때 꿈이 뭐였는데 지금 여기서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서 계세요?라고 물었죠."라고 대답하더란다. 전유성 선생이 그 후배는 맞아도 싼 놈이라고 썼는데 내가 그 얘기를 하자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빙긋이 웃었다. 전유성은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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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지상렬이 어느 프로그램에 나와 한 얘기도 인상 깊었다. 데뷔 전 야인 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밤새 술을 마시고 텅 빈 지갑으로 서울역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전유성과 조영남이 함께 지나가다가 일면식도 없던 지상렬을 보고 "딱 보니까 밤샜네. 야, 이거로 해장이나 해라."라고 하고 만원 짜리 한 장을 던지듯 주고 가더라는 것이다. 그때 돈을 준 사람이 조영남이었는지 전유성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지만 아무튼 그런 식의 에피소드는 전유성 선생 삶 도처에 널려있다.

희극인이나 코미디언 대신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해 대중화시킨 전유성 선생. 소극장 개그 콘서트를 방송계로 끌어온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창시자인 전유성 선생. 내친김에 '볼링장은 밤새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로 심야 볼링장을 창안했던 전유성 선생. 친구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근조 화환의 띠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신 '너네 어머니 오이지 참 맛있었는데'라고 적어 보낸 전유성 선생. 내 책 『읽는 기쁨』을 다섯 권이나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했던 전유성 선생. 지난 5월 진주문고 북토크 때 모자를 쓰고 조용히 나타나서 "남들이 하는 행사도 다녀 보고 그래야지.":라고 말씀하시던 전유성 선생. 부재중 통화가 뜬 걸 보고 내가 전화를 드리는 동안 스마트폰 버튼을 잘못 눌렀다고,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잘못'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던 전유성 선생. 선생은 그런 분이었다. 전유성 선생님. 많은 분들이 이렇게 애도를 표하는 건 그만큼 선생님이 잘 살다 가셨다는 뜻이겠죠. 안녕히 가십시오. 고마웠습니다. 전유성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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