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리뷰(스포일 조심!!)
박찬욱을 좋아하던 사람들도 이번 영화는 유치하고 징그러워 싫다는 소릴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시할 수는 없다. 나도 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살해한다는 설정은 억지라기보다는...... 조금 낡은 느낌이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때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세련되진 않은 블랙코미디적인 소재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걸 만들어가는 박찬욱의 과도한(?) 미장센의 힘은 정말 못 말린다. 비교 불가의 집념이다. 이병헌의 취미인 분재 기술이 시체를 처리하는 데 쓰이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하는 박찬욱의 인장이다. 그런데 이런 취향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영화에 대한 그의 욕망과 권력과 순수함조차 그토록 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엉뚱하게도 <은교>에서 "여고생이 왜 대학생하고 섹스하는지 알아요? 외로워서 그래요."라는 김고은의 대사가 떠올랐다. 혼자 살며 위스키를 마시는 박희순은 외로워서 그렇게 된 것이고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를 크게 틀어 놓은 임성민 역시 외로워서 그런 것이다. 여기서 박찬욱의 고집이 보인다. 보통 살인이 벌어질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이 되면 음악의 볼륨부터 줄이는 게 상식이지만 박찬욱은 볼륨을 줄이는 대신 화면 밑에 자막을 넣는다. 비릿한 웃음이 새어 나오는 유머 포인트다. 이병헌이 뱀에 물릴까 봐 장화와 가죽옷을 차려입는 장면도 웃기고 뱀에 물렸을 때 벌어지는 슬랩스틱도 웃긴다. 손예진이 "도대체 무슨 수로 면접 보러 가서 뱀에 물릴 수 있느냐"고 따지는 장면 역시 유머다. 그런데 그런 장면들을 보며 웃다 보면 어느새 서글퍼지는 게 오갈 데 없는 박찬욱표 영화다.
박찬욱의 영화는 금색 은색 실로 쫀쫀하게 짜여진 태피스트리 또는 화려한 벽지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 벽지를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거기엔 우습고도 슬픈 인간의 모습들이 장미꽃 무늬처럼 징그럽게 얽혀 있다. 살인을 했고, 거짓말을 했고, 이미 들켜서 이젠 무마하거나 되돌리지도 못하게 된, 엉망이 되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뭔가 바꿔 보려고 하는 이병헌과 손예진의 모습은 어딘가 한쪽이 무너져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어 서글프다.
말수가 적고 남이 한 말만 그대로 따라 하는, 가족 앞에서는 첼로 연주도 하지 않는 딸아이의 모습은 이병헌 부부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인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하다. 그런데 계속 신고 있는 아이의 장화의 색이 바뀌는 건 무슨 의미였을까.
너무나 유명하고 뛰어난 배우들인 많이 나와서 나중에는 좀 물리는 기분이 들 정도인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 장악력이 다 뛰어나고 특히 이병헌의 연기는 거의 신의 경지다. 염려했던 손예진도 연기를 꽤 잘했고 염혜란은, 아 염혜란은 그토록 이상하고 기괴한 역을 그렇게 잘 해낼 일인가. 정말 끝내준다.
영화 속엔 눈에 익은 장면들도 많이 등장한다. 염혜란이 뱀에 물린 이병헌의 다리 상처를 빠는 모습엔 '박쥐'가 생각났고 이병헌이 뻰치로 이를 뽑는 장면에서는 누구나 '올드보이'를 떠올릴 것이다. 댄스파티에서의 인디언 복장은 봉준호의 '기생충'을 가져온다. 이 모든 건 다 박찬욱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야망은 끝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 정말로 열심히 기획하고 구조화하고 직접 영화 만들기로 실천한다.
나는 이 리뷰의 제목을 '부지런한 비관주의자가 만든 걸작'이라고 쓰련다.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소년은 올바른 생각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고 첫사랑은 반드시 깨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다 죽을 것이다. 하지만 까뮈는 이런 시지프스의 신화 같은 삶에도 저항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비관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박찬욱은 비관으로 가득 찬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완벽을 기해 자신의 영화를 만드는 부지런한 비관주의자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운명은 순응하는 자는 같이 가고 반항하는 자는 끌고 간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운명에 순응하고 있는가 반항하고 있는가.
(아무래도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그때 가서 다시 리뷰를 써야겠다. 그때는 메모지에 메모도 좀 하고 스마트폰 자판 누르는 대신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써야겠다. 이 글은 보령 가는 버스 안에서 쓴다. 이제 그만 써야겠다. 멀미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