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카이노 바이크》리뷰
연극은 참으로 신기한 예술이요 눈속임이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철과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가짜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을 뿐인데 거기 수창이나 명기가 올라타고 엔진 거는 효과음이 들리면 진짜로 그 오토바이가 달리는 게 관객의 눈에 보이니까 말이다. 더구나 뒤에서 마구 뛰어오다가 뒷자리에 후다닥 올라타는 경우나 태진의 모습은 흡사 만화영화를 보는 듯 황당하고도 경쾌하다.
김철의 작가가 쓰고 변영진 연출이 무대에 올린 연극 '이카이노 바이크'를 3년 만에 다시 보았다. 오사카 이쿠노의 옛 이름인 이카이노에서 철근을 훔치는 등 불법적 일을 해서 생활하는 수창·수양 남매와 절친 경우에게 오토바이는 일본 형사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도구이자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그들의 저항 의식이기도 하다. 이카이노는 '돼지를 치는 곳'이란 재일한국인 거주 지역의 멸칭인데 1973년 이전까지만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명과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역시 '자이니치'인 김철의 작가가 다시 살려낸 것이다.
제주 4.3 항쟁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오사카로 도망치듯 왔던 수창 일당은 언젠가는 '우리나라'로 돌아가겠다는 소망을 품고 살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급기야 한반도에서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수창이 밀항을 하려다가 사기를 당하고 한동안 칩거하기도 한다. 수창이 북한으로 가려고 했던 걸 알게 된 경우는 "우리 고향은 북한이 아니라 제주 아니냐"라고 따지지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던 시대에 우리나라라는 개념은 모호하기만 하다. 결국 수창은 일본과 북한의 속셈이 맞아떨어져 진행되었던 역사적 기만에 속아 북송선을 타게 되는데, 이는 수창을 쫓던 일본 형사들에게까지 안타까움을 안겨주는 비극이었다.
변연진 연출 작품답게 연극은 엄청 시끄럽고 활기차다. 배우들은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바닥을 구르고 주먹질을 한다. 여성 배우들도 다소곳과는 거리가 먼 웃음과 액션을 보여준다. 특히 경찰에 쫓기던 명기 옆으로 올백 머리를 한 김대일 배우가 나타나 함께 뛰기 시작하면 객석에 앉은 관객은 웃느라 허리가 꺾일 지경이다. 하지만 한참을 웃다 보면 그들의 악다구니와 고함소리가 서러워서 결국 눈물을 흘리게 된다. 수창은 북한에서 죽고 경우도 늙고 그들을 구박하던 쿠마타 형사까지 암에 걸린 상황에서 작가와 연출은 선물 같은 회상 장면을 선사한다. 죽은 수창이 다시 나타나 이카이노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호쾌하게 웃는 장면이 그것이다. 가진 건 없고 온갖 차별과 멸시에 시달리던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꿈과 동경이 있었던 그 시절 말이다. 역시 죽었던 수창의 동생 수양이 나타나 하는 "행복을 동경했지, 돈도 없으면서!"라는 대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환청처럼 귓가에서 아련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성북동의 단골집에 가서 소주를 한 잔 해야 했다. 2025년 10월 5일까지 성북동 여행자극장에서 공연한다. 이 연극은 공연할 때마다 다시 보시라. 정말 좋다. 아, 2020 간사이 연극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연출상, 2021 간사이 연극제 우수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 작 : 김철의
● 연출 : 변영진
● 출연 : 문성일 유희제 정명군 이세호 김보정 류이재 도예준 이주순 박지예 박도연 최경식 김대일 심우성 장태민 신재열 탁승빈
● 제작 : 불의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