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박호산의 살리에르

음악극 《아마데우스》리뷰

by 편성준


지금 전 세계 어디서나 모차르트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지만 살리에르의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희곡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를 통해 천재성과 평범함, 예술과 질투, 인간의 욕망과 신성을 극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어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박호산과 연준석 주연의 연극 《아마데우스》를 보았다. 이미 밀로스 포만 감독에 의해 1984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이미 여러 번 보았지만 연극 무대에서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어떻게 재현될 것인지 궁금했다. 무엇보다도 박호산이 살리에르 역할을 맡는다는 데 큰 기대를 걸었고 결론적으로 그 기대는 크게 충족되었다.


최근 박호산의 연기를 보면 드라마든 연극이든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물 흐르듯 당연히 느껴졌는데 이번 살리에르 역은 확실히 달랐다. 비록 몇 번 대사 실수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말 그대로 혼신의 연기였고 폭발하는 힘이 있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는데 신은 그토록 간절한 자신을 버리고 음탕하고 품위 없는 천재 모차르트를 선택했다. 신에게 배신당하고도 너무나 뛰어난 모차르트의 재능을 알아볼 능력밖에 갖추지 못한 살리에르의 분노와 좌절을 박호산만큼 잘 표현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었다.


음악 말고는 모든 게 서툴고 제멋대로인 모차르트를 연기한 연준석도 좋았고 무엇보다 모차르트의 음악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짜릿했다. 나는 모차르트가 민중 극단의 주문을 받고 '마술피리'를 만들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마지막 레퀴엠을 작곡할 때 쇠약해져(물론 살리에르가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펜을 잡을 힘도 없던 모차르트를 찾아온 살리에르가 그와 함께 악보를 그려나가는 시퀀스는 감동 그 자체였다. 두 남자가 허밍으로 주고받는 모차르트의 악보 설계는 마치 천사들의 비밀 회합을 훔쳐보는 듯한 쾌감을 선사했다.


피터 쉐퍼의 희곡 '아마데우스'는 전통적 의미의 영웅 비극이 아니라, ‘평범한 자의 비극’(mediocrity tragedy)을 그린다는 점에서 현대 비극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박호산의 오랜 팬으로서 이 작품을 어제 본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당신도 어서 그 행운을 누리시기 바란다. 11월 23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커튼콜 때도 사진을 찍기 못하게 해서 무대 사진이 한 장도 없는데 이건 좋은 일인 것 같다. 덕분에 마음것 배우들에게 박수를 쳐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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