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를 즐기는 자가 진정한 장르 팬이다

김봉석의 『호러의 모든 것』리뷰

by 편성준

무서운 영화를 왜 볼까. 궁금하기 때문이라고 김봉석은 말한다. 들여다보면 더 무서울 것 같은데 그냥 돌아서면 무섭고 찜찜하니까 결국 다시 가서 확인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인간에게 공포는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공포가 없다면 인간은 발전할 수 없단다. 이게 김봉석이 『호러의 모든 것』을 쓴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문명 세계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비논리적인 이야기에 혹한다. 무당이나 점술사를 찾아가 결혼식이나 개업식 날짜를 잡고 길흉을 따져 할 일을 선택한다.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엔 2005년 미얀마 군사정권이 점성술에 의지해 양곤에서 네피도로 수도를 이전한 사실을 소개한다.


책의 앞부분엔 '헨젤과 그레텔'이나 '백설공주' 같은 동화들이 사실은 얼마나 잔혹한 이야기에서 출발해 순화되었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디즈니에서 밝고 귀여운 캐릭터 그리는 데 싫증이 나서 뛰쳐나와 《비틀쥬스》 같은 이상한 영화를 만든 애니메이터 출신 팀 버튼 감독의 작품 세계도 소개한다.

1816년, 제네바 호수 근처 별장에서 시인 바이런의 친구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큐라,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고딕문학의 출발' 에피소드 같은 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즐겁고 귀한 깨알 지식 정보다.


책을 읽으며 정말 놀라게 되는 건 김봉석 작가의 서브 장르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탐구정신이다. 예를 들어 그는 스티븐 킹이 쓴 소설 목록과 그걸 바탕으로 만든 영화·드라마 들의 목록을 다 꿰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작품 하나하나의 성과에 대해서도 일일이 다 평이 가능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하루 종일 장르소설만 읽고 있던 이상한 아이'였다는 그의 고백을 들은 게 생각나다. 지난 1월 역삼동에 있는 서점 《로티&로희》애서 열렸던 '장르 모독' 모임에서 꽤 잘 쓴 호러소설이라며 소개받았던 다카노 카즈야키의 <건널목의 유령>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온다. 우리가 비이성이나 광기 혹은 초자연적인 것들에 빠져드는 이유는 세상의 질서를 근본부터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성과 합리주의만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 뭔가 원인을 찾아보려 애쓰는 것이다.


책 말이에 SF의 장르 전문가인 김봉석의 지인이 /그에게 "SF, 범죄 미스터리, 판타지 , 호러 등 모든 장르를 다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김봉석은 어느 하나만 고를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호러를 즐기는 자가 진정한 장르 팬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고 당장 호러의 대가가 되거나 장르 지식이 켜켜이 쌓이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호러라는 게 왜 필요하고 사회적으로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된다. 즉, 호러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됨으로써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밝아지는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참고로 이런 책은 빌리지 말고 직접 사서 곁에 놓고 자주 들춰봐야 한다. 장르에 대한 기본 지식은 물론 심리학, 인류학에 이르는 성찰까지 한 번 읽고 버리는 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강추한다. 호러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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