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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령 생활

연극 대사에서 깨달음을 얻은 윤혜자

마지막 나눈 대화가 짜증이나 신경질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녀

by 편성준

아침 7시 20분쯤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제저녁 서강대메리홀에서 봤던 연극 〈기도문 (Litanei)〉 이야기를 했다(아내는 어제 연극 관람과 오늘 아침의 자원봉사 참가를 위해 혼자 서울로 혼자 올라갔다). 연극 '기도문'은 참사로 자녀를 잃은 두 어머니의 이야기였는데 강애심 배우가 마지막 대사로 "여러분,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두 번 묻고는 "행복하세요. 이땅에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윤혜자는 그 대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났다. 어제 나와 보령에서 헤어지면서 살짝 짜증을 냈던 게 기억났던 것이다. 도서관에서 오전 필사 강연을 마친 나는 12시 버스를 예약한 윤혜자를 태워다 주기 위해 급하게 집으로 와 윤혜자를 태웠고, 넉넉하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천역으로 가는 실수를 저질러 시간이 촉박해졌던 것이다. 아내는 자기가 버스를 타고 간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보령종합터미널 대신 대천역으로 왔느냐며 살짝 짜증을 냈다. 출발 몇 분을 앞두고 터미널에 도착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아내는 말했다. "나나 당신이 내일 죽을 수도 있잖아. 사실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고. 이제는 큰 미련이나 여한도 없고. 그런데 마지막 나눈 대화가 짜증으로 기억되면 얼마나 가슴 아프고 후회가 되겠어......"

"앞으로는 당신에게 함부로 화를 내거나 야멸찬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반성했어." 아내가 말을 마치자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변기 위에 앉아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전화를 끊고 바로 봉사활동을 하러 달려 나갔을 것이다. 커플의 대화는 이렇게 일상적이다. 나는 홀로 연극 한 편을 보고 와서도 이런 깨달음을 얻는 아내가 자랑스럽다. 이로써 윤혜자는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임이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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