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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령 생활

정호승 시인과 미옥서원

미옥서원 갔던 날 이재종 대표와 나눈 이야기들

by 편성준

오서산 아래 미옥서원에 가면 누구나 두 번 놀라게 된다. 일단 이런 산골짜기에 대형 서점이 한옥과 함께 들어서 있는 규모에 놀라고 또 한 번은 서점 주인인 이재종 대표의 열정에 놀란다.


어제 밖에 나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자며 아내와 함께 나섰다가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미옥서원에 가기로 했다. 청소역에 있는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바로 미옥서원으로 올라갔다. 마침 서점에 계시던 이재종 대표가 반갑게 우리는 맞아 주셨다. 이 대표는 우리가 보령시립도서관과 함께 기획한 '인문학 여행' 시리즈 강연 이야기부터 했다. 보령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드문데 두 사람이 하고 있어서 참 보기 좋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는 도서관 강연 포스터가 있으면 달라고 했고 지금 없다고 했더니 나중에라도 꼭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런 행사는 서점에 포스터를 붙여 놓고 적극 홍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미옥서원에서 얼마 전에 열렸던 정호승·안치환 콘서트 얘기도 하고 그전에 했던 동물원 콘서트 얘기도 했다. 서점 매대엔 얼마 전 다녀간 정호승 시인의 친필 사인 책들이 여러 권 누워 있었다. 아내는 그중에서 시와 산문이 어우러진 책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를 골랐다. 커피가 놓인 테이블 앞에 앉은 이 대표는 11월 초에 보령문화원에서 열리는 이문구 선생 학술 대회 얘기부터 했다. 그러면서 권영민 교수가 이곳 출신이라 행사에도 자주 온다고 귀띔했다. 알고 보니 이 대표는 그동안 자신이 만든 출판사를 통해 이문구 선생의 책들을 이미 여러 권 펴내고 있었다. 나는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이문구 선생의 『매월당 김시습』을 읽고 싶었노라 말했더니 이 대표가 당장 찾아서 가져다주었다. 이 대표는 토정 이지함 선생의 유고를 번역 의뢰해 낸 책도 있다고 그건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보령에 제대로 된 서점 하나 없다는 얘기를 하다가 전주의 독립서점 '잘 익은 언어들'에 갔던 얘기를 했고, 전주에서는 책방에서 시민들이 책을 사면 시청에서 책값을 20%나 지원해 주는 멋진 제도에 대해 얘기했다. 그 얘기 끝에 이 대표가 전주 시장이었던 김승수 저자의 책 『도시의 마음』 얘기를 하길래 그 책도 사서 가져가기로 했다. 로컬 콘테츠 얘기를 하며 몇 년 전 배지영 작가가 군산 도슨트를 자처하며 쓴 『군산』도 샀다.


아내 윤혜자가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는 하고 싶은) 서해안에 있는 동네책방들을 잇는 '서행안 책방 벨트' 구상 얘기를 했더니 이 대표는 곡성에 있는 김탁환 작가 얘기를 했다. 우리는 보령에 계신 김환영 화백 얘기를 했고 그와 함께 작업한 뮤지션들인 '서천 워낭소리'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 대표는 충남 동네책방 지도를 만든 김영미 비평가 얘기를 했고 '젊은이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한다'라고 외치는 군산의 강영철 시인 얘기도 했고 로컬 콘텐츠라면 모종린 교수도 꼭 만나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홍성 '풀무구' 얘기를 했고 윤혜자가 부안의 '파란 곳간' 다녀온 이야기도 했다. 책과 서점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전화가 왔는데 주차장에서 차를 빼달라는 내용이었다. 손님은 서점을 닮는 것인지 차 빼달라는 전화도 상대를 배려하는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목소리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1부만."이라고 농담을 하며 이 대표가 먼저 일어섰고 우리는 카운터로 가서 아까 산 책들을 계산했다. 아내는 이문구 선생의 동인문학상 수상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를 사자고 했다. 우리 집 책꽂이에도 있었지만 얼마 전 처분했기에 다시 사기로 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정호승 시인의 책을 열어보니 서두에 '산산조각'이라는 시가 떡하니 나를 맞았다. 스물세 살부터 시인으로 살아온 정 시인이, 그동안 천 편도 넘는 시를 써 온 정 시인이 자신의 삶을 위로해 주는 단 하나의 시를 고르라고 하면 이 시를 고르겠다고 쓰더니, 정말 시가 이마를 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 청소역 앞에 있는 소머리국밥전문점 '청소한일식당'에 꼭 가보시라. 뜨겁고 맑은 고깃국물이 지친 마음과 몸을 따뜻하게 위로해 줄 것이다.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 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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