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웃기고 시로 조지는 이정록 시인

시인과 해장술까지 마신 날 이야기

by 편성준


이번 주 화요일 저녁에 보령 원도심어울림센터 3층에서 이정록 시인이 '디카시 쓰는 법' 강의를 했습니다. 원래는 김미희 시인이 해야 하는데 그분이 근래 몸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친하게 지내던 이정록 시인이 네 번 강의를 통째로 맡게 된 거죠. 갑자기 연락이 와 부랴부랴 디카시(디지털카메라 사진을 보고 쓰는 시)에 관련된 자료를 모아 강의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날 경북 상주에서 하던 글쓰기 수업 마지막 시간을 끝내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갔는데도 7시 반이더군요. 이정록 시인은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루덴스' 얘기를 걸어 놓고 "디카시는 서로 주고받으며 즐기려고 쓰는 시"라는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에서 사진 한 장 꺼내 놓고 그거 보면서 가볍게, 그러나 인생과 시간을 담아서, 짧게 쓰면 된다는 거죠. 디카시가 바야흐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데 원조가 우리나라라고 하면서 고성의 이상옥 시인 이름도 알려주었습니다. 디카시를 어떻게 쓰냐 하면 뒤집어진 풍뎅이 사진을 놓고 그 밑에 "또 술 먹고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같은 멘트를 달아 남편에게 보내면 된다고 해서 좌중을 웃겼습니다.


이정록 시인은 입과 뇌에 유머 모터가 달린 사람 같았습니다. 바쁜 걸 표현할 때 '가을엔 부지깽이도 바빠 날뛴다'라는 속담을 소개하고 '벙어리도 시어머니 욕으로는 밤을 새운다'라는 말로 여성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누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 제목을 언급하자 "나는 이렇게 바꿔유. 칭찬은 돼지도 순대를 꺼내준다."라며 의뭉을 떨었습니다.

우리 속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같은 말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게 하는 힘이 있는데 그게 바로 '비유'의 힘이라는 거죠. '싸가지 없다'라는 욕은 진짜 센 말인데 그 속에 든 '아지'는 두 개를 연결하는 뜻을 담고 있는 어미라는 것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자신의 사진을 꺼내 디카시를 쓰는 숙제까지 내주고 수업이 끝났습니다. 이정록 시인이 저에게 소주 한 잔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보령의 황선만 작가와 한잔 하기로 했다면서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세 사람이 '먹보마차'라는 허름한 포장마차로 가서 두부김치와 꼬막을 시켜 소맥을 마셨습니다. "오늘 술값은 강의료를 받은 내가 낼 테니 너는 작은 방을 하나 잡으라"며 황선만 작가에게 숙소를 부탁하는 이정록 시인이었습니다.

이정록 시인은 개구쟁이처럼 농담을 했습니다.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을 보고 "콩이 말했다, 나 물 좀 줘, 그래서 콩나물이야."라고 거짓말을 지어 놓고는 두 사람을 보고 웃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쉴 새 없이 말장난을 쳐야 언어감각이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의자'라는 시 얘기를 꺼냈더니 그 시를 사람들에게 많이 전파해 준 분들 얘기를 했습니다. 그중에 문정희 시인도 있어서 제가 문정희 시인의 시 좋다고 얘기하고 다니다 문 시인께 직접 저자 서명 시집을 선물 받은 사실도 훈장처럼 자랑했습니다.

이정록 시인은 책을 안 읽는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결국 내 책을 읽게 될 거야. 슬기로운 손자들에게 내 책을 읽어줘야 할 테니까"라고 말했답니다. 이 시인이 낸 동시집이 아주 많거든요. 2차로 동대동에 있는 맥주집에 가서 또 술을 마시고 시를 마시고 유머를 몸에 발랐습니다. 새벽 한 시 반에 겨우 택시를 타고 헤어졌습니다.


아침 7시 조금 넘어 전화가 왔습니다. 황선만 작가와 아침을 먹기로 했으니 저도 먹보마차 앞으로 어서 나오라는 이정록 시인의 명령이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러 간 곳이 하필이면 '나주곰탕'이었습니다. 이 시인은 곰탕에 든 건더기에 소주와 맥주를 마시자고 했습니다. 해장술은 대학 때 이후로 거의 처음(아, 정지아 작가 댁에서도 조금 마셨구나)이었지만, 이정록 시인은 낮에 천안인가 대전인가 가서 무슨 심사를 봐야 한다고 했지만, 저도 저녁에 보령시립도서관에서 장르소설 읽기 수업이 있었지만, 아침 술의 유혹을 어찌 물리칠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정록 시인과 함께, 인데 말이죠.

시 쓰는 얘기도 하고 글 쓰는 얘기, 책 읽는 얘기도 했습니다. 마시다가 열차 시간이 다 되자 취소를 하고 그다음 열차를 다시 예매한 이정록 시인인 제 나이를 물었습니다. 어떤 때는 사십 대처럼 보이고 어떻게 보면 오십 대 후반으로도 보인다고 하길래 정확한 생년월일을 알려드렸습니다. 나이가 짐작 가지 않는다는 말이 칭찬처럼 들려 좋았습니다. 척 봐도 직업과 나이가 보이는 사람보다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차를 가져온 황선만 작가는 소주잔에 물만 부어 마시다가 먼저 일어났습니다. 술도 안 마신 황 작가가 카운터에서 술값을 계산하자 이정록 시인이 "계산하는 자의 뒷모습은 왜 저리도 아름다운가 "라는 즉석시를 읊어서 식당 아주머니를 웃겼습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나 술 마셔. 이정록 시인하고... 아침에 바빴어, 라고 대답하고 있는데 이정록 시인이 전화기를 달라고 하더니 아내와 오랫동안 통화를 했습니다. 다음 주 강연 시간에 보기로 하고 끊었습니다.

시는 안 쓰고 시인인 척하는 후배들 얘기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빵떡모자 쓰고 예술가인 양 하고 다니는 후배에게 "야, 빵덕모자는 빵에 갔다 와야 쓸 수 있는 건데..."라며 야지를 놓았고, 화려한 옷과 팔찌 등으로 멋을 낸 후배 곁으로 가서는 귓속말로 "글을 써. 시발놈아."라고 했답니다. 낄낄거리며 소주와 맥주를 한 병씩 더 시켜 마시고 헤어져 시인은 대천역으로 가시고 저는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와서 이정록 시인의 시집을 꺼내 뒤적이다가 '더딘 사랑'이라는 시를 발견했습니다. 이정록 시인은 '말로 웃기고 시로 조지는 사람'이라는 저의 생각이 아래 시를 읽으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짧은 시에서 부처와 달을 들었다 놨다 하거든요.



<더딘 사랑>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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