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해수욕장에서 아내와 나눈 이야기들
아침에 집 뒤 봉산으로 산책을 나섰다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우리 대천해수욕장 갈까?" 아내가 반색을 했다. "그럴까?!" 차를 몰고 20분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 대천해수욕장점으로 갔다. 아침 일찍이라 한산했고 해수욕장 앞엔 치우지 못한 촌스러운(?)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널려 있었다. 우리는 커피와 베이글, 샌드위치 등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AI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의 본질을 잘 이해하려면 김대식 박사가 출연한 유튜브를 몇 편 보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인지도'와 '라이브'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얘기했다. 곁들여 '연극이야말로 AI가 만들 수 없는 라이브성의 끝판왕'이라는 얘기도 했다. 이런 시대일수록 인간의 본능과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살펴봐야 한다는 아내의 의견에 동감했고 AI가 발달할수록 인간의 개인 서사가 더 중요해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건 우리가 책 쓰기 워크숍에서 늘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둘 다 올해 1.5권의 책을 써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아내는 '연극이 나에게'를 써야 하고 나는 인문학의 쓸모에 대한 쉽고 실용적인 책을 한 권 구상 중이다. 두 사람이 함께 쓸 책은『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시골(지방) 편이다. 보령에 왔으니 보령과 서울에서 일어난 일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솔직하고 재미있게 담는 게 목표다.
둘이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가 문득 이런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연말 부산 주책공사 이성갑 대표가 '올해의 책'으로 꼽은 구민정·오효정 PD의 『명랑한 유언』을 읽은 탓이다(책이 나왔을 때 도서관에서 읽다가 왠지 캐롤라인 냅 책과 표지·제목이 비슷하다는,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빠져 손에서 잠시 놓았던 책이다). 각자 방송계에서 고군분투하며 PD 경력을 쌓아오던 구민정·오효정 두 사람은 2023년 서른 살에 《지구 위 블랙박스》라는 전무후무한 환경 다큐를 공동 연출하는 성과를 올렸으나 곧 오효정이 위암 4기 판정을 받음으로써 모든 게 멈추고 암투병이 시작되었다. 두 저자가 함께 쓴, 너무 좋은 책이고 슬픈 이야기였다. 오효정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는데 특히 암 판정 직후 응급실에서 주춤주춤 커튼 밑으로 가까워지던 엄마의 발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는 대목에서는 나도 속절없이 눈물을 뿌려야 했다. 이성갑 이 나쁜 사람, 트리거 워닝도 없이 이런 책을 권하다니, 하면서.
아무리 그럴듯한 계획이 있어도 마크 타이슨에게 한 대 얻어맞으면 다 소용없어지는 것처럼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끝이다. 솔직히 요즘은 앉거나 일어서는 자세나 관절 상태부터 예전 같지가 않다. 하지만 예전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더욱 올해는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해야 한다. 특히 잠을 많이 자야 한다. 당신도 올해 건강하시기 바란다. 물론 갑자기 술을 끊거나 근육질로 돌변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너무 일만 하지 말고 과음하지 말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적당히 운동하며 살면 된다. 뭐든 각 잡고 하는 건 또 우리가 매우 싫어하지 않나.
그런데 올해 특히 더 건강해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답은 간단하다. 올해니까. 내년엔 내년이니까 특히 건강해야 한다. 진심이다. 이제 우리는 해마다 '특히'를 달고 살아야 한다. 둘이 대천해수욕장 해변을 좀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바닷가 근처에 사는 건 특히 좋은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