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지문학상 전시회 《나를 생각해 주세요》
"지난 1년 간 521개 강좌를 51개 장소에서 진행했습니다." 마이크를 든 책고집의 강태운 이사가 이렇게 말하며 전시회 축하연의 문을 열었습니다. 어제는 북촌에 있는 갤러리 단정에서 팬지문학상 전시회 《나를 생각해 주세요》가 열린 날입니다. 팬지문학상이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주관하고, 인문공동체 책고집이 수행한 ‘디딤돌 인문학(한국형 클레멘트 코스)’ 사업에서 새로 제정한 문학상의 이름이죠. '디딤돌인문학'의 창시자인 최준영 책고집 대표 덕분에 저도 이 클래스의 강사로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고 이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전국 53개 교정시설과 노숙인 시설, 지역자활센터 등에서 '디딤돌 인문학' 강연을 수강한 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문학 공모전이었으니, 감옥에 있거나 노숙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쓰는 글이니, 얼마나 구구절절 사연이 많겠습니까. 그 사람들의 응모작 중 우수작들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는데 어제가 시상식 겸 전시 첫날이었던 것입니다. 「창백한 아이」라는 글로 대상을 탄 강진민 작가는 평생을 지배해 온 가난과 친족의 폭력, 그리고 할머니와의 따뜻한 공감 등으로 심사위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심사 후기를 들어보니 누구랄 것 없이 만장일치로 강진만 작가를 뽑았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의 글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작가 본인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우직하고 직관적으로 쏟아냈고 결국 차가웠던 친족을 용서하는 글이었기에 더더욱 읽는 이의 마음을 울렸던 것이죠.
고명희 작가의 「가족」이라는 시(일명 개새끼)도 전시장에 온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비롯한 최우수작들은 천 위에 인쇄된 형태로 전시되었는데 권선근 대표를 비롯한 운영위원들의 정성과 노고를 짐작할 수 있는 전시형태였죠. 실제로 권 대표는 입술이 부르튼 모습으로 나타나 좀 애잔한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수상과 최우수상을 수상한 참가자들도 와서 소감을 말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상금이 탐나서 글을 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실제로 대상은 문체부장관상이라 상금 액수도 대단해요). 제가 공주교도소에서 글쓰기 강연할 때 '10분 글쓰기'로 냈던 최시권 작가의 '하마터면 이렇게 살 뻔했습니다'라는 글도 우수상을 타서 다행이었습니다(정작 작가는 수감 중이라 오지 못했고요).
팬지(Pansy)의 어원은 프랑스어 ‘팡세(Pensées, 생각)’입니다. “나를 생각해 달라”는 염원을 담고 있는 이 문학상은 낮은 곳에서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방명록과 축하카드에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 당신, 축하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이차로 간 '라플란드 드 카페'에서는 축하연 및 디딤돌인문학 신년회가 있었는데 수상자들의 이야기도 듣고 캐이터링으로 준비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타 연주와 노래로 흥을 돋우기도 했습니다(저도 나가 조용한 노래를 한 곡 불러 분위기 깨는 데 일조했습니다).
축하연은 끝났지만 전시는 북촌 정독도서관 옆의 '갤러리 단정'에서 1월 24일까지 계속됩니다. 순번을 정해 안내를 해주시는 분들이 상주할 예정이니 아무 때나 가셔서 작품 감상하고 글을 찬찬히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쓰다 보니 뿌듯함이 몰려옵니다. 이 인문학 수업 덕분에 저는 생전 알지 못했던 곳에 계시는 분들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느니 최대 수혜자는 바로 저라는 깨달음입니다. 아아, 제가 이렇게 거룩한 인간은 아닌데 자꾸 이렇게 되네요. 그만 써야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필요 없고 대신 북촌의 갤러리로 가십시오.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