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진전에 갔습니다

박용만 사진전 〈HUMAN MOMENT〉

by 편성준

사진을 찍는다는 건 ‘너무 쉬워서 어려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화가들은 절망했다고 한다. 이제 아무리 정밀하게 묘사해도 사진을 따라갈 수 없겠구나 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화가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사진이 할 수 없는 새로운 터치와 구도,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화가들은 정확한 윤곽선보다 빛이 흔들리는 순간을 붙잡으려 했고 또 어떤 화가들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자기 감정과 내면을 화면 앞쪽으로 끌어올렸다. 사진이 재현을 가져가 버린 뒤 회화는 재현 너머의 세계를 발명해 낸 것이다.


나는 사진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오랫동안 아름다운 풍광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기술로 소비되었다. 하지만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다. 풍광을 넘어 의미와 감동, 메시지를 담아내는 일, 나는 그것이 사진작가의 존재 이유라고 믿어왔다. 어제 갔던 박용만 전 회장의 사진전 〈HUMAN MOMENT〉는 그런 나의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의 사진에는 ‘아름다운 풍광’ 너머 사람이 보였고, 사람 뒤편으로 인생의 순간이 보였다. 그래서 제목이 'HUMAN MOMENT'였던 것이다.


왜 50년이나 사진을 찍어 왔으면서도 전시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이 없었다'라고 대답한다.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그였지만 전직 대기업 회장이자 요리사(은퇴 후 일주일에 두 번 독거노인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배달해 드리는 봉사단체를 운영하며 요리도 함께 한다. 그가 자신의 칼로 양파 써는 걸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의 새 직업에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인 그에게 사진은 '여유 있는 사람의 호사'로 비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진심과 고민으로 찍어 차곡차곡 쌓아온 그의 작품들은 사진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였고, 드디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쇼핑백을 가운데 두고 공원벤치에 떨어져 앉아 있는 노부부 뒤로 키스하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포착된 사진은 당연히 연출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우연히 만들어진 구도였다는 설명을 듣고 감탄했다. 이런 사진은 우연이 잡힌 행운이 아니라 늘 좋은 사진을 위해 '스탠바이' 하고 있던 작가에게 준 신의 작은 선물인 것이다. 지하철에서 잡지를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독일 신사의 깊게 패인 주름부터 포장마차 안에서 살짝 키스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실루엣, 기나 긴 잔디밭 앞에서 빨간 윗도리와 희 치마를 입고 무심히 안아 있는 젊은 날의 부인까지 박용만 작가의 사진엔 순간을 담아내려는 기다림과 함께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묻어난다. 인간이나 사물의 삶은 다 제각각이지만 그의 카메라 앵글에 들어오는 순간 의미와 애정이 생기는 마법이 일어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삶의 흔적을 찍는, 박용만 작가의 작품을 한 번 보러 가시기 바란다. 2월 15일까지 명동에 있는 피크닉(piknic) 1층부터 4층에서 전시하다. 관람료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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