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애비뉴얼》에 실린 저의 에세이 한 편 소개합니다
《애비뉴얼》이라는 매거진에 에세이를 하나 실었습니다. 여성조선과 《K공감》 때부터 안면이 있던 장가현 기자 덕분에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주제가 '에세이스트들의 에세이스트'였기에 저는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을 시작으로 하길종 감독의 『백마 타고 온 또또』, 김하나·황선우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등을 들먹였고 제프 다이어의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는 책을 찬양했습니다. 떡볶이로 자서전을 쓴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나 술로 자신의 인생관을 드러낸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을 지나 공사 현장을 취재하다 아예 ‘노가다’꾼이 된 송주홍의 '업세이' 『노가다 칸타빌레』를 소개했습니다. 뒤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법서들도 몇 권 나열하다가 결국 제게 영향을 준 그 모든 특급 에세이스트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말로 끝나서 제목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애비뉴얼 #에세이
나에게 ‘에세이’라는 형식을 처음 인식시켜 준 책은 1990년에 나온 기형도의 『짧은 여행의 기록』이 아니었을까 한다. 당시 문과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취직해 밥을 벌 수 없을까 생각하던 나는 어느 날 종로2가 파고다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그대로 세상을 떠난 한 시인의 내밀한 기록들에 매료되었다. 일간지 문학 기자로 일하면서 만난 강석경 선생과의 인연이나 차비를 받지 않겠다던 버스 안내양 이야기도 인상 깊었지만 ‘그래서 대구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장정일이라는 이상한 소년이 살고 있다’라는 구절은 이상하게 오래도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은 그의 전설적인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보다 일 년 전에 나왔기에 그의 절망적인 시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같이 여행을 떠나거나 도박을 하거나 술을 마셔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런 건 안면을 튼 사이가 아니면 당장 실천하기 어렵다. 그에 비하면 누군가가 쓴 책을 읽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누구를 기다리나? 고도를 기다리나” 같은 사무엘 베케트식 대사가 나오는 1970년대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만든 하길종 감독의 『백마 타고 온 또또』를 읽었기에 나는 그가 UCLA 영화과에서 공부했으며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와 동기였다는 걸 안다. 김하나·황선우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었기에 결혼으로 묶이지 않아도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 룸메이트로 잘 지낼 수 있음을 안다. 에세이 작가들은 자신이 살아온 내력은 물론 세계관까지 죄다 책 안에 털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가끔 거짓말로 점철된 작가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결국 독자들에 의해 걸러지게 마련이다. 글을 잘 쓰려면 일단 잘 살고 보아야 하는 게 이 업계의 불문율이다.
에세이는 쓰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장르다. 오랜 카피라이터 생활을 접고 첫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원고를 쓰러 제주도로 내려갔을 때 내가 묵고 있는 별장 벽난로 위엔 당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래 머물고 있던 김영하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가 꽂혀 있었다. 상하이 푸둥공항 장면부터 드라마틱하더니 이내 김영하와 서대문경찰서 안 형사와의 관계가 드러났다. 아, 소설가가 쓰는 에세이에는 이런 플롯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아울러 김영하 작가가 운동권이었다는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글에는 그 사람이 보인다고 하던데 에세이가 특히 그렇다. 소설에서 투덜거림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이 닉 혼비라면 에세이에서는 단연 빌 브라이슨과 제프 다이어다. 다이어의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읽어보면 여행을 다니면서 날씨나 호텔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여행기 한 권을 채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읽다 보면 작가가 깔아놓은 유머의 부비트랩을 밟은 독자는 꼼짝없이 그의 문학적 포로가 되고 만다.
요조는 떡볶이로 자서전을 썼고(『아무튼, 떡볶이』) 김혼비는 술로 자신의 인생관을 드러낸다(『아무튼, 술』). 그런가 하면 송주홍처럼 기사를 쓰려고 공사 현장을 취재하다 아예 ‘노가다’꾼이 됨으로써 업세이(일+에세이) 작가가 된 사례도 있다(『노가다 칸타빌레』). 나는 에세이 작가이면서 동시에 글쓰기 선생 노릇을 하고 있으니 작법서도 많이 읽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작가가 되려면 누구나 읽는다는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Bird by Bird)』는 물론 SF 작가 어슐러 K. 르귄의 『글쓰기의 항해술』, 일본의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 등 외국 작가들의 책을 섭렵했고 최근엔 이은희 작가의 『4줄이면 된다』, 문지혁 소설가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 전혜정 교수의 전혜정 교수의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등 국내 작가들 작품에 열광하고 있다.
무인도에 가져갈 영화를 딱 한 편만 고른다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소설 한 편을 꼽는다면? 죽을 때 관 속에 함께 넣어 주었으면 하는 시 한 편만 고른다면?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처럼 나에게 영향을 준 에세이스트를 하나만 고르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기형도부터 문지혁까지, 에세이스트건 아니건 에세이를 쓴 수백 명의 작가가 다 나의 스승이고 친구이며 죽비다. 나는 동냥젖으로 큰 심청이처럼 그들의 영양분을 틈틈이 섭취하다가 나도 모르게 에세이스트가 되고 말았다.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감사드린다. 지금도 내 책꽂이에서 나를 염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 모든 특급 에세이스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