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할매』
황석영은 개똥지빠귀 부부가 새끼를 낳고 키우는 과정을 보여주며 태초의 자연과 숲을 장엄하게 그리는 듯했다. 하지만 곧 날개를 다쳐 눈애 파묻혀 죽는 흰 점박이 개똥지빠귀의 모습을 냉정하게 묘사한다. 이건 앞으로 등장할 사람이나 다른 생물들을 다룰 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는 느낌을 주었고, 그 예상은 맞았다. 황석영은 섣불리 연민하거나 분노하는 대신 개똥지빠귀 뱃속에 있다가 팽나무로 자라난 주인공 할매의 시각을 통해 자연과 동식물,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긴 시간을 지켜보는 방법을 택한다.
부커상 최종 후보였던 『철도원 삼대』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라는 화제의 소설 『할매』를 읽었다. 군산 하제마을에 있는 팽나무가 이 야심 찬 소설의 카메라 렌즈다. 팽나무 할매가 서서 지켜보는 600 년이라는 시간은 마루야마 겐지의 '천 년 동안에'보다 짧지만 시선은 훨씬 깊고 고요하다. 팽나무가 이백오십 살 지났을 즈음 사람의 세상은 조선이라는 왕국이었고 우리는 소설 속에서 몽각이라는 수도자를 만나게 된다. 옛 문헌들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몽각의 이야기를 지나 저자는 천주교 박해, 동학 혁명 등 근대사를 다룬다. 이 책을 읽기 직전 최초의 천주교 순교터였던 전주 전동성당에 들렀던 나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기득권층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천주교도와 동학도 들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교인들의 재산을 노리고 고발·체포하는 것은 물론 평등사상을 부르짖는 이들과 연루시켜 정적들을 파멸로 몰아가기에는 더 없는 기회였다. 일제강점기 비행장에서의 사격연습과 카미가제 이야기, 이어지는 독재 시절 이야기에도 저마다 슬픔들이 고여 있다.
인간의 욕망은 세월이 지나면서 종목을 바꾸어 나타났다. 금강 만경강 하구를 막고 갯벌을 매립해 농지를 얻겠다는 서해안 간척사업이 그것이다. 방조제를 쌓고 바닷물을 막아 매립한 갯벌에서 말라죽는 생합들의 모습은 몇십 년 전까지는 상상도 못 하던 창조적인 비극이다. 집권에 급급한 정치인들과 탐욕스러운 건설업자들, 그리고 언론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토목범죄'임에 틀림없지만 단죄를 하기엔 그 규모나 배짱이 너무 크다. 하여 문규현 신부처럼 의로운 이들은 무수한 생명들이 짓이겨진 땅바닥에 엎드려 삼보일배를 거듭할 뿐이다.
이 소설의 모든 대사는 따옴표 없이 진행된다. 이야기를 매우 농축해 쓴 느낌이다. 게다가 황석영은 소설적 구성엔 관심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무기의 그늘』을 읽을 때가 떠올랐다. 건조하고 침착하게 인간사의 비극을 전하는 황석영의 문체는 간결할수록 풍부해지고 무심한 척할수록 간절해지는 역설을 성립시킨다. 챗GPT를 조수로 활용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지만 그건 소재와 시대 배경, 구성 방법 등을 의논하며 작품의 구조를 세우는 데 약간의 도움을 받은 것일 뿐 모든 디테일은 작가의 성실한 조사와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당장 이 작품을 쓰기 위해 400권이 넘는 책을 샀고 이중 144권을 뽑아 공부하며 읽었다고 작가가 직접 밝히고 있지 않던가.
보령시립도서관에 왔던 황보름 작가와 차를 마시며 "아무리 훌륭한 소설도 결국은 일상에서 쓰이는 평범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더라“라며 서로 용기를 내서 써보자고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평범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라도 누가 어떤 각오와 계획으로 쓰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잠깐 절망한다. 남들은 은퇴하거나 삶을 정리할 나이에 늘 새로운 포부와 노력으로 새 작품을 써내는 대가의 성실함에 저절로 고개 숙여지는 역작이다. 당신도 얼른 읽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