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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13. 2019

한라산을 마시며 소설을 읽는 저녁

아내 없이 제주에서 한 달 살기 8



아침에 일어나 뭔가 띄어쓰기가 헷갈리는 게 있어서 검색을 하다가 아예 '편수자료(1편)_교과용도서의 표기·표현 사례'라는 띄어쓰기에 대한 자료를 PDF판으로 다운 받아 읽어보게 되었다. 띄어쓰기의 세계는 언제나 오묘했다. 예를 들어 대한중학교는 '대한 중학교'가 원칙이지만 '대한중학교'처럼 붙어 써도 된다. 인천국제공항도'인천 국제공항'이 맞지만 다 붙여 써도 무방하다. 그런데 문제는 알프스 산맥은 띄어야 하지만 나주평야는 붙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말 앞에 외래어가 오면 띄고 한글이나 한자가 오면 붙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떤 건 허용이 되고 어떤 건 허용이 안 되는 이 어이없는 비일관성 앞에서 나는 짧게 절망했다. 그리고 맞춤법을 찾아보며 느꼈던 인생의 비애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짧은 글을 지어 SNS에 올렸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내가 제주로 내려오고 나서 이 동네에서는 처음 만나는 비였다. 거실에서 플랭크 자세를 1분간 취하고 바닥에 쓰러졌다가 밖으로 나가 15분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하루 종일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집으로 들어와서 공포영화를 소재로 한 '공처가의 캘리'를 하나 썼다(공처가는 공포영화 대신 아내의 눈치를 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극본가 캐빈 윌리엄슨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영화 [스크림]의 각본가로 유명한 그는 어느 날 국경에 있는 한 싸구려 호텔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다가 "에이, 저런 영화 극본은 나도 쓸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잘하면 5천 달러는 받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그 시나리오가 영화사를 돌고 돌아 결국 50만 달러에 팔리는 바람에 일약 스타 작가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작품이 바로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이었다. 그는 그 후로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패컬티], [데스티니] 등 젊은 관객들이 좋아하는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계속 쓰는 흥행 작가가 되었다. 참고로 나는 그 영화가 나온 후에 어떤 모기약 광고를 만들면서 '나는 네가 지난여름 모기에 물린 사실을 알고 있다'라는 카피를 써 광고주에게 칭찬을 받은 기억이 있다.

어제 산 소설가 정이현의 에세이 [풍선]을 조금 읽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나 <삼풍 백화점> 같은 그의 소설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 산문집은 읽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십여 년 전에 나온 책이라 그렇기도 했지만 [해변의 여인]이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밀양] 등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보고 쓴 리뷰들이 너무 후진 것이다. 흡사 '행복전도사'로 유명했던 최윤희 씨가 초기에 쓴 영화평 같았다. 물론 최윤희 선생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녀가 연재했던 영화 칼럼은 너무 낯간지러운 수준이었다. 이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읽음으로써 야기된 의기소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잘 쓴 글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책을 뒤졌다. 이럴 때는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좋다. 앨리스 먼로의 연작소설 [거지 소녀]를 찾아냈다. 이 소설은 소설가 김탁환 선생이 추천해 준 책이었는데 시간에 쫓겨 중간쯤 읽다 멈춘 상태였다. 마침 전에 읽다 멈춘 곳이 표제작인 단편 <거지 소녀>라 그걸 다시 읽었다.

"패트릭 블래치퍼드는 로즈를 사랑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로즈는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인데 아버지는 죽고 아버지와 재혼했던 새엄마 플로와 그의 정부 빌리포프 사이에서 억지로 자라다가 운 좋게 장학생으로 뽑혀
대학에 입학한 여자였다. 그녀는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패트릭이라는 부잣집 아들과 사귀게 되는데(아버지가 상점 몇 개를 갖고 있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백화점 체인을 소유한 집안이었다) 헨쇼 박사라는 70대 노파 집에 얹혀살며 토마스 만과 톨스토이를 읽던 그녀가 밴쿠버섬의 시드니 근처 패트릭의 집으로 가서 곤경을 당하는 얘기들이 나온다. 튜더 양식과 다른 건축양식이 뒤섞여 지어진 저택을 본 그녀는 '장소가 사람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숨을 막아 생기를 완전히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더불어 스코틀랜드 출신 상류층에겐 'Scotch'라고 해서도 안 되고 'Scotich'라는 표현도 안 되고 오직 'Scot'이라는 표현만 허용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한 마디로 가난한 돼지우리에서 살던 소녀가 부잣집으로 선을 보러 가서 온갖 기만과 두려움과 창피함을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이야기들이다. 모든 좋은 소설가들이 그렇듯이 앨리스 먼로도 이러한 사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잔인하고 교활하기 그지없다. 독자인 나는 그런 그의 글에서 역설적인 쾌감을 느꼈다.

단편을 다 읽고 뿌듯한 마음에 저녁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반주를 곁들이다가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내가 대번 술 마셨냐고 묻는 것이었다. 소주를 반 병밖에 안 마신 나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항변했지만 '이미 혀가 꼬부라졌다'라는 아내의 과장엔 아연실색할 뿐이다. 어쨌든 한라산을 마시며 소설을 읽는 흐뭇한 저녁이었다. 아니, 소설을 읽은 후에 술 마신 걸 아내에게 들킨 저녁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억울하다. 한라산을 한 병도 다 못 마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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