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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2. 2019

눈물이 많아졌다

아내 없이 제주에서 한 달 살기 13

어젯밤 늦게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눈물을 뿌렸던 소설 [단순한 진심]에 대한 독후감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탁 앞에 앉아 잠깐 썼다. 짧게 쓴 독후감을 브런치에 올리려고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음 주에 김장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였다. 나는 김장할 때마다 내가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으나 아내는 괜찮다고 하면서 다른 분들이 도와주기로 했다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은 단순히 입양아 얘기가 아니었다. 문장은 치밀하고 단정했으며 시간이나 공간을 다루는 솜씨도 능숙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넘쳤다. 개인적으로는 재작년에 읽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나 그보다 훨씬 전에 읽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이후에 오랜만에 맛보는 감동적인 소설이었다.

점심으로는 어제 국수를 먹던 식당 바로 앞에 있던 수제버거집에 가서 돈가스를 포장해 먹기로 했다. 젊은 사람이 하는 가게였는데 어제 국수를 먹고 나와 산 커피는 2천 원짜리라지만 양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오늘은 텀블러를 들고 가서 햄버거와 커피를 주문했다. 원래는 돈가스를 사려고 했으나 카운터 앞에 있는 메뉴판에 수제햄버거 리스트가 먼저 나오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햄버거를 사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햄버거는 세 가지가 있었는데 볼케이노 수제버거는 매운맛이라 별미이고 웨어하우스 수제버거가 제일 잘 나간다고 했다. 나는 계란 반숙이 들어있는 써니사이드업 수제버거가 더 맛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그걸로 하나 달라고 했더니 젊은 주인이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0.3초쯤 짓더니 곧 표정을 바꿔 알았다고 하며 웃었다. 햄버거 포장을 다 하고 계산을 하기 직전에 머신에서 커피를 내렸는데 텀블러를 채우느라 그랬는지 확실히 어제보다는 커피의 양이 많아졌다.

집에 들어와 마루에 작은 상을 펴고 앉아서 와챠플레이로 틀어놓은 [멜로가 체질] 재방송을 보면서 편하게 써니사이드업 수제버거를 먹었다. 맛이 괜찮았다. 햄버거를 다 먹고 양치를 하다 보니 아내는 김장을 한다고 벌써부터 분주한데 나 혼자 제주에서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식탁으로 돌아와 '아내 이행시'로 구성된 공처가의 캘리를 하나 썼다. 내용은 '아내는 다음 주에 서울에서 김장을 한다는데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아, 지금쯤 내 욕을 하고 있겠지.'라는 내용이었다.

에버노트에 쓴 공처가의 캘리 내용을 동기화시키느라 스마트폰 테더링을 통해 인터넷을 연결했다가 다음 포털에 들어가 [동백꽃 필 무렵] 마지막 회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강원도로 MT를 간 출연진과 스태프들도 어젯밤 다 같이 모여 시청을 했는데 다들 TV 앞에서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어제 마지막 회는 23.8%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고 특히 온 동네 사람들이 합심해서 이정은을 살리려고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그를 실은 앰뷸런스가 지나가자 도로가 홍해 갈라지듯 차들이 비켜주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대목을 읽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드라마를 보지도 못했는데 이런 주책을 부리다니 어이가 없었다.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이러다가 동네에 있는 동백상회에 가서도 울까 걱정이었다(둘째 날 내게 중력에 대한 농담을 했던 아저씨의 가게 이름이 하필 동백상회다). 감정조절에 신경을 좀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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