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김장을 하고 남편은 긴장을 하고

공처가의 캘리

by 편성준

아내는 서울에서
김장을 하고
남편은 제주에서
긴장을 하고

아내는 지리산에 있는 '고은정의 제철음식학교'에서 김치와 장 담그는 법을 배운 뒤부터 해마다 간장 된장을 담그고 김장을 한다. 아내가 나를 만났을 때는 미식가가 아니었고 음식에 그리 관심이 많던 사람도 아니었다. 술은 좋아했지만 안주에는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밥하는 법부터 가르치는 어떤 요리 연구가(알고 보니 요리 연구가가 아니었지만) 한 사람을 만나면서부터 음식에 눈을 뜨게 되고 결국 음식에 대한 가치관과 인생관까지 약간 달라진 케이스다.

제철음식학교 교장이자 약선음식생활연구소 대표이기도 한 고은정 선생은 우리 음식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전문가이자 활동가인데 특히 약이 되는 음식인 ‘약선음식’의 대가다. 그런데 그의 스튜디오 <맛있는 부엌>이 서울이 아닌 지리산 실상사 근처에 있었기에 그곳까지 가서 뭘 배우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서교동의 '사단법인 끼니'라는 곳(성북동 소행성 바로 옆집에서 2년 간 살아 '옆집총각'이라 불렀던 동현도 여기서 만난 사람이었다)에서 고은정 선생의 강의를 들었던 아내 윤혜자는 기획자인 자신의 장점을 살려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은정 선생의 음식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지리산 일박이일 코스’를 생각해 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수강생들이 한 달에 한 번 지리산의 '맛있는 부엌'에 모여 일박이일 동안 우리 음식에 대해 배우는 강의를 제의한 것이었다.

1년에 총 24강의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각 도에서 모여든 수강생들은 24가지 밥하는 법과 24가지 김치와 반찬 만드는 법 등을 배우고 몇몇 사람은 평생 친구가 되었다. 나도 한 번 따라가서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아내는 이 교육 과정 중에 있던 콘텐츠를 토대로 고은정 선생과 함께 <반찬이 필요 없는 밥 한 그릇>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작년과 재작년에 아내는 동현의 차를 타고 지리산에 가서 김장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뭔가 급한 일이 생겨서 같이 내려가지를 못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지리산이 아닌 서울에서 김장을 하기로 했다는데 나는 제주도에 내려와 있는 바람에 또 참석을 못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여행 작가 박재희 선생이 함께 하고 동현도 도와주기로 했다지만 미안하고 떳떳지 못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 아내가 서울에서 김장을 하는 동안 남편은 제주에서 긴장을 하고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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