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Nov 25. 2019

평일 대낮 바닷가에서 셀카 찍던 중년남의 진심은

아내 없이 제주에서 한 달 살기 16

"혹시 지난주에 공항 가셨던 손님 아니세요? 여기 글 쓰러 내려왔다고 하신 분."

식료품을 좀 사야지 생각하고 함덕해수욕장 가는 버스를 탔다가 갈아타는 정류장에 도착 예정 버스가 최소한 46분 후라는 걸 확인하고는 절망에 빠져 부른 지역 택시가 하필 지난주에 잠깐 서울 올라갈 때 나를 태웠던 그 기사분이었다. 아저씨는 이 동네에 택시가 한 80여 대 있는데 이렇게 연달아 손님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며 웃었다. 나는 나온 김에 점심부터 먹고 식료품을 사서 들어갈 거라고 했더니 그럼 털보식당에 가세요, 거긴 메뉴가 여러 개니까,라고 안내를 해줬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내려서 가보니 내가 처음 내려온 날 오전에 들어가서 이른 점심으로 된장찌개를 먹었던 바로 그 집이었다.

지난번엔 7천 원짜리 된장찌개를 먹었으니 이번엔 만 원짜리 해물된장을 먹어보자 하고 시켰다. 내 옆 테이블에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둘이 앉았는데 한 사람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정말 쉬지도 않고 계속 떠드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리안 모리아티의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이라는 추리소설을 읽고 있던 나는 제발 이 사람들이 빨리 밥을 먹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상을 쳐다보니 그쪽 역시 아직 숟가락도 놓기 전이었다. 나와는 간발의 차이로 먼저 들어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시끄러워서 책을 한 페이지도 읽을 수가 없었다. 다른 테이블로 옮길까도 생각해 봤는데 그러기엔 타이밍을 놓쳐서 어색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남자가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농협, 돈, 기계 등등의 단어들이 분절되어 들려왔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시킨 밥이 더 늦게 나왔지만 남자들의 수다가 듣기 싫어서 찌개와 반찬을 폭풍 흡입하고는 먼저 일어서버렸다. 계산을 하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근처 원두커피 파는 집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해수욕장 근처로 가면 있다고 했다.

함덕해수욕장이라 쓰여 있는 아치를 지나 조금 더 걸으니 당장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로 나갈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바다와 마주하니 속이 탁 트이는 게 파도가 치는 곳까지 가보고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터벅터벅 걸어가서 바다가 보이는 나무 스탠드 위에 서서 바다 사진을 찍었다. 바다 사진만 찍으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폰도 아이폰11로 바꿨는데 셀카나 한 번 찍어볼까 하고 바다를 배경으로 얼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무표정하게 찍으니 너무 심각했고 심각하게 인상을 쓰니 오히려 쪼다 같았다. 심지어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연기자나 모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생각하면서 억지로 웃어봤더니 그나마 좀 나은 것 같았다. 조금 웃는 것부터 활짝 웃는 것까지 단계별로 사진을 찍어본 뒤 두 장만 남기고 다 지웠다.

바닷가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는데 20대 커플 한 쌍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못 볼 걸 봤다는 몸짓으로 얼른 저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긴 월요일 대낮에 바람 부는 바닷가에서 고독한 중년 남자 혼자 소리까지 내고 웃으면서 셀카를 찍고 있으니 조금 무섭지 않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웃고 찍는 사진 중 하나를 골라 아내에게 보냈더니 "좋네. ㅎㅎㅎ. 너무 신난 거 아냐?"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 바닷가에 있는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샀다. 바로 옆에 스타벅스도 있었지만 저렴한 국산 커피를 사고 싶어서 노란 간판이 있는 가게에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담아 달라고 했더니 한 잔에 1,500원이라는 것이었다. 작은 소리로 되게 싸네요,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니 여직원이 푸웃, 하고 웃었다. 마트에 들어가 식료품과 약간의 술 등을 사서 택시를 불러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이번 주말에 또 나 없이 김장을 하게 된 아내의 기막힌 사연이 생각이 나서 공처가의 캘리를 한 편 썼다. '아내는 서울에서 김장을 하고, 남편은 제주에서 긴장을 하고'라는 캘리 밑에 지리산 '고은정의 제철음식학교'에서 장 담그기와 김장하는 법을 배운 아내가 해마다 남편 없이 김장을 하게 된 사연을 곁들여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각각 올렸다. 고은정 선생에 대해서 좀 자세히 쓰고 싶어서 아내가 전에 브런치에 써놓았던 글을 참조했는데 글을 올리고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아내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찍혀 있었다. 내가 뭔가 잘못된 사실을 올리거나 누가 보면 곤란해지는 글을 아무 생각 없이 올리면 아내가 바로 전화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나는 잔뜩 긴장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막상 아내는 버튼을 잘못 누른 것뿐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했는지 알고 떨었다고 했더니 아내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공처가의 캘리를 자주 썼더니 정말 간이 작아진 것 같았다.

혼자 거실과 식탁을 오가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다가 페이스북에 들어갔을 때 내 담벼락에 걸려 있는 캘리그라피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그 글과 글씨를 언제 썼는지는 잘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왜 썼는지는 선명하게 기억을 한다. 외국의 어떤 공익광고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스피치 무대를 만들어 놓고 발표자가 울먹일 때 그의 부모가 짠 하고 나타나 자신의 자식을 껴안는 장면이었다. 그 캠페인의 취지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한 뒤 후회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페이스북의 창시자인 주커버그가 '왜 부자들은 나이 들거나 은퇴까지 기다렸다가 자선사업을 하느냐. 나는 지금 하겠다'라고 한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2001년도 9.11 테러와 2003년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까지 한꺼번에 떠올라 그 캘리를 썼던 것이다. 나는 담벼락의 사진을 다운받아 다시 올리면서 내가 왜 그 캘리를 썼는지에 대한 설명을 붙였는데 특히 대구 지하철 참사의 여학생과 아버지의 통화 내용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났다.

마지막 순간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하자.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911 테러 때 쌍동이빌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다들 휴대전화를 꺼내 가족들과 통화를 했는데 그 내용이 대부분 "사랑한다"는 작별인사였다고 한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로 희생되었던 사람들 중 어린 중학생인가 고등학생 딸이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통화하는 내용을 뉴스에서 들었다. 지하철 안에 연기가 너무 많다는 딸의 말에 속수무책인 아버지가 "아빠가 지금 그리로 갈까?"라고 물으니 "아냐, 아냐, 오지 마. 오지 마. 아빠!"라고 외치는 걸 듣고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대부분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고 하고 싶은 말도 뒤로 미룬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 눈물을 뿌리며 후회를 한다. 더 미리 말할걸. 더 자주 말해 줄걸... 그러지 말고 지금 말하자. 그 사람에게.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라고.

일기를 마감하려고 하고 있는데 문득 전에 같이 일하던 카피라이터 박수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녀가 퇴직할 때 내가 써줬던 '박수 칠 때 떠난 카피라이터 박수'라는 캘리와 글을 읽고 주변에서 종종 연락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 글의 주인공이 너냐고 하면서. 그래서 오늘 새삼 그걸 다시 읽어보니 괜히 뭉클해져서 핑계 김에 연락을 해본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공처가의 캘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캘리 얘기를 하게 되다니 신기했다. 저녁을 먹었는데도 뭔가 출출한 게 허전한 느낌이다. 하루에 한 끼밖에 밥을 먹지 않는 박수와 카톡을 해서 그런가.  


작가의 이전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