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처가의 캘리
만약 술이나 담배가 몸에 좋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술 담배가 몸에 좋다면_흡연 편]
# 성준, 회사 흡연실에 와서 심란한 표정으로 담배를 하나 꺼내 문다.
성준) 아, 김 국장 이 개또라이 쌔끼...
SE) 휴~(담배연기 내뿜는 소리+한숨소리)
#심리 상태와는 반대로 몸이 좋아지는 걸 느끼는 성준
성준) 이상하네. 속은 상하는데 몸은 점점 가벼워져.
김 대리, 나 담배 한 대만 빌려줄래?.
[술 담배가 몸에 좋다면_음주 편]
# 실연을 당한 혜자, 1차로 잔뜩 술을 마신 뒤 2차를 하러 혼자 술집에 도착.
혜자) 나쁜 놈! 잘 먹고 잘 살아라.
내가 그년보다 백 배는 더 이쁘구먼...
# 슬픈 마음과는 반대로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
혜자) 이상하네. 화는 나는데 몸이 자꾸 좋아지는 느낌이야...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 더 줘봐요.
아마 이렇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숨어서 술 담배를 하게 될 것이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몸에 좋은 걸 복용하는 건 좀 쑥쓰러운 일이니까.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놈들한테는 이런 욕을 할 것이다.
"저 자식은 새파랗게 젊은 게, 몸을 얼마나 아끼는지. 아주 술고래에 골초라니까!"
예전에 술 한창 마시고 다닐 땐 술 많이 마시는 것도 일종의 자랑거리었다. 벌개진 얼굴로 출근해서 "아, 죽겠다. 나 어제 새벽 두 시까지 마셨어."라고 말하면 동료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도 나의 음주력(?)에 약간의 경의를 표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왜 전날 술 마신 얘기를 하는 걸까. 어떤 심리학자가 쓴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인간에게는 속죄 본능 때문에 몸에 안 좋은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즉, 술 마신 얘기를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이유는 내가 어젯밤 스스로를 이렇게 괴롭혔으니 그걸 좀 알아 달라는 무의식의 표현이다.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분석이었다.
나는 주량이 소주 두 병 정도다. 두 병까지는 기분 좋게 취하는 수준이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좀 더 마시기도 한다. 반면에 아내는 소주 한 병이 마지노선이고 한 병을 넘기면 다음날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수준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취한 날은 몹시 긴장을 한다. 하루는 아내가 술이 꽤 취한 상태로 집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 마중을 나오라고 명령했다. 동네 어귀로 급하게 내려가 보니 아내는 취해서 흐느적거리면서도 나를 보고 반가워 팔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성준) 여보, 술을 얼마나 먹은 거야?
혜자) 백 병!
성준_) 하하, 백 병 먹으면 죽지.
혜자) 그럼 오십 병!
나는 오십 병을 마셨다고 주장하는 그녀를 부축하고 올라와 겨우 옷을 벗긴 뒤 재웠다. 한 병만 넘으면 취하는 아내가 무슨 속상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 것일까. 그러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속상하고 심란한 일은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때로는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도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