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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18. 2019

대학로 위트앤시니컬

또 성북동 자랑

성북동에 살면 좋은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가 걸어서 시 전문 서점인 위트앤시니컬(witncynical)'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로 동양서림 2층에 있는 이 서점은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들로 가득한 작은 서점이다. 어제 아내와 동양서림에 가서 장석주 시인의 [한 줄도 좋다, 우리 가곡]을 사면서 2층으로 올라가 유희경 시인이 상을 탄 [2020 현대문학상 수상시집]도 같이 구입했다. 유희경 시인이 약간 쑥스럽다고 하면서 수상시집을 내주었다. "김민정 시인 행사엔 가셨어요?"고 안부처럼 묻는 유희경 시인에게 "저는 예약한 것도 몰랐었는데 아내가 예매를 해놔서 전 그냥 끌려 갔었어요."라고 대답했더니 "복 받으신 거예요." 라며 농담을 했다. 무료 책자로 어떤 문인 대회 에세이집까지 챙겨주는 유희경 시인과 무슨 얘기를 누나다가 문정희 시인 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 나서"아, 그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시인 있잖아요. 왜 그분 이름이 생각이 안 나지?"하고 괴로워했더니 최승자, 김혜순, 허수경, 김민정......등등의 시인 이름이 줄줄이 흘러나오다가 문정희, 에서 내가 맞아요!라고 크게 소리를 질러서 함께 웃었고 아내는 '이제 우리 남편은 뭐든지 기억을 못 한다'며 창피해했다.

시집엔 수상작인 <교양 있는 사람>을 비롯해 여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유희경 시인은 자기 시 말고도 수상후보작 중 강성은, 박소란, 백은선, 안희연 등 모두 끝내 주는 시인들이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집에 와서 몇 편 읽어보니 '교양 있는 사람은 노크하며 묻는다 똑똑 계십니까'로 시작하는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시와 ‘창문을 열어두고 온 까닭은 조용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감각>이라는 시가 제일 정답고 재미있었다. 시인은 맨 뒤의 수상소감 '우리는 왜 집으로 돌아가는 걸까요'라는 글에서 자신이 매일 오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혼자 서점에 앉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저녁 창문에 있는 자신과 그 모습을 우두커니 들여다보고 있는 시인 자신의 이야기도 한다. 나는 유희경 시인의 이런 태도가 좋다. 시를 쓰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늘 걷는 일처럼 일상이 된 사람, 쓰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때로는 절망도 하지만 결국은 또 새로운 시를 써보며 거기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열두 해 동안 버스 안 옆자리에 앉은 독자를 만나는 기분으로 꾸럭 꾸럭 시를 쓰고 지우고 했던 사람.

시를 여기에 인용할까 하다가 그냥 제목만 쓰기로 했다. 궁금하다면 지금 서점에 가서 이 시집을 한 권 사시라. 그리고 시간을 좀 낼 수 있다면 대학로 동양서림 2층에 있는 위트앤시니컬에도 가보시라. 운이 좋으면 이름은 여성스러운데 자신의 시집을 내밀며 몹시 멋쩍어 하는 잘생긴 남성 시인을 만나실 수 있을 것이다. 아내와 나는 성북동에 있는 횟집 '만섬포차'에 갔다가 유희경 시인과 이병률 시인을 옆자리에서 만나는 행운을 누린 적도 있다. 이런, 어쩌다 보니 나는 어제에 이어 또 동네 자랑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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