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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22. 2019

튀김식당에서 튀김은 안 팔아요

제목을 배반하는 세 개의 식당들

아내와 '옆집 총각'이었던 동현 이렇게 셋이서 양양에 있는 후배 커플 집에 가서 크리스마스를 지내기로 했다. 지난번 출장 기간에도 고양이 순자를 맡아 주었던 후배에게 가서 순자를 맡기고 나오며 늦은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하다가 배가 고프지 않으니  좀 더 가다가 정하기로 했다. 맛집에 있어서는 늘 확실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 동현이 홍천에 있는 '친절막국수'가 어떠냐고 해서 좋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가 보니 주차장이 막혀 있고 불도 꺼져 있었다.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개인 사정 때문에 가게 문을 잠깐 닫는다는 안내문이 쓰여 있었다.

할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전에 스마트팜 취재 차 갔다가 사과농장 대표님에게 육회 막국수를 얻어먹었던 봉평의 '미가연'이라는 곳이 생각나서 지도 검색을 해보니 홍천에서는 한 시간 넘게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또다시 동현의 얼굴을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동현은 '튀김식당'이라는 데를 가보자는 대안을 제시했고 우리는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천 시내로 들어가니 '튀김식당'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달린 일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동현이 주차를 하러 간 동안 우리 둘이 식당 안을 둘러보니 튀김은 전혀 없고 사골국물을 베이스로 칼국수와 만두를 파는 집이었다. 우리는 일단 찐만두를 하나 시키고 동현이 돌아오면 나머지 메뉴를 결정하기로 했다. 칼국수집은 김치가 맛있어야 하는 법인데 미리 보시기에 담겨 나온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대접에 덜어 한입 먹어보니 시원하고 맛이 좋았다. 아내도 마음이 놓이는 표정이었다.

동현이 온 뒤 칼국수 등을 시켰더니 비로소 찐만두가 나왔다. 만두는 납작한 모양이었는데 만두소가 꽉 차지 않은 게 특징이었고 만두피가 쫄깃한 게 맛이 아주 좋았다. 아내가 이건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만두 같다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돼지고기를 안 넣고 만드시는 거 맞느냐고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돼지고기 알러지가 있는 양양의 후배에게 생만두를 사다 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아주머니에게서 '아주 쬐끔 넣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사람 앞에 세 개씩 돌아가는 만두를 다 먹을 동안 칼국수는 나오지 않았다. 아마 주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칼국수를 썰어 조리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참을성 많은 아이들처럼 조용히 앉아 칼국수와 칼만두를 기다렸다.

칼국수 역시 맛이 좋았다. 면이 쫄깃쫄깃하고 국물의 맛은 깊었다. 빨간 다진 양념도 함께 나왔는데 넣지 않아도 국물 본연의 맛이 있어서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우리는 뜨거운 칼국수를 훌훌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뜨거운 걸 잘 먹는 아내와 나는 빨리 먹었고 땀을 많이 흘리는 동현은 천천히 먹었다. 거의 다 먹을 때쯤 내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왜 식당 이름이 튀김식당이에요?" 라고 물었더니 전에 튀김 팔던 집을 인수해서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대답하셨다. 재밌네요. 저희 동네에 덴뿌라라는 술집이 있는데 거기서도 덴뿌라는 안 팔거든요,라고 했더니 아주머니가 어느 동네 사시는데요?라고 물으셨다. 서울 성북동이라고 했더니 "의정부에 있는 오뎅식당도 오뎅 안 팔잖아요."라고 하며 웃으셨다.

덴뿌라를 팔지 않는 성북동의 실내포차 덴뿌라, 튀김 메뉴가 없는 홍천의 튀김식당, 그리고 오뎅 대신 부대찌개를 파는 의정부의 오뎅식당까지, 난 그들의 '성의 없음'이 마음에 들었다. 전에 덴뿌라 사장님에게도 물어본 적도 있는데 명동에서 양복 만드는 일을 하다가 요식업으로 전업했던 사장님은 덴뿌라를 팔던 식당의 간판을 바꾸기 귀찮아서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광고나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네이밍이나 캐치프레이즈 정하는 데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물론 그게 맞는 방법이요 순서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컨셉이 겉으로 드러나는 최초의 접점이 바로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마케팅의 '정석'일 뿐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그냥 우연에 기대서도 태연히 일을 시작한다. '어, 인수하고 보니 튀김집이네.' '전에 덴뿌라 팔던 집이구만.'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음식을 판다. 그래도 될 집은 다 된다는 건 검증된 진리다.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을 다 해 조리를 하고 맛이 있으면 손님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다시 한번 입 안으로 발음해 본다. 덴뿌라를 팔지 않는 성북동의 덴뿌라, 튀김 메뉴 없는 홍천의 튀김식당, 그리고 부대찌개를 파는 의정부의 오뎅식당. 이 얼마나 즐겁고 통쾌한 '삐딱이'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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