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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31. 2019

성북동 소행성의 세밑 풍경

성북동 소행성 일기

운동을 하러 간 아내를 동네에서 만나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전철역 옆 스타벅스 근처로 내려갔다. 날이 무척 추운데 찢어진 청바지를 잊고 나온 나를 보고 아내는 어이가 없는 얼굴을 했다.
“당신이 청소년이야?”
“괜찮아. 안 추워. 반항하는 기분으로 그냥 입어봤어.”
“나 참.”
오랜만에 송림원에 가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었다. 하얀 스웨터를 입었는데도 짜장을 한 점도 튀기지 않은 채 식사를 마친 내가 자랑스러웠다. 아내는 커피숍 <일상>에 가서 커피를 사달라고 했다. 아내가 필라테스 학원에 털모자를 두고 왔다고 해서 다시 가지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고전소설을 하나 사기로 했는데 내가 고른 책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었다. 고등학교 때 날림으로 읽은 기억이 나서 다시 읽고 싶어졌다. 7천 원짜리 책을 현금 할인받아 6천300원에 샀다. 털모자를 찾아 나온 아내는 장갑도 끼지 않고(지난번에 잃어버렸으므로) 떨고 있는 나를 보고는 동네 옷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새 털장갑을 하나 사주었다. 털장갑을 끼고 찾아간 일상은 하필 휴일이었다. 우리는 길 건너에 있는 커피숍 <소마>로 왔다. 사장님에게 드립 커피 중 맛있는 걸로 알아서 달라고 부탁했더니 에티오피아 난세보와 아리차를 권하셨다. 산미가 있고 맑은 맛이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연극표를 예매하다가 옆에 앉은 가발 쓴 중년 남자가 너무 떠드는 바람에 창가 자리로 옮겼다. 그 남자는 그 후로도 20여 분을 줄기차게 떠들다가 자신의 얘기에 맞장구를 쳐주던 젊은 여성 둘과 함께 차를 타고 사라졌다. 1986년도에 포스트잇을 처음 봤을 때의 하등 쓸 데 없는 감흥을 큰 소리로 늘어놓는, 자기 과시가 심한 수다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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