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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30. 2019

국악 공연도 직접 보면 재밌다!

남도 민속문화의 갈라쇼 - <남도풍류>

평소엔 평범한 사람인데 무대에 올라가서 능숙하게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갑자기 무협지에 나오는 무술의 고수를 만나는 것처럼 놀라는 경우가 있다.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뮤지션들이 특히 더 그런 이유는 그들의 타고난 달란트와 반복된 연습의 결과가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할 때 객석까지 전달되는 어떤 희열 때문일 것이다. 이는 국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단법인 남도민속놀이문화예술원이 주최해 젊은 타악 그룹 무취타부터 판소리와 민요 등 소리의 신진세력들과 아쟁의 명인들을 불러 모아 선정릉역 민속극장풍류에서 펼친 연말 공연을 어제 보았다.


나와 아내가 이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국가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전수자가 된 은곡도마 이소영 씨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을 하고 있는 젊은 고수 김태영 씨 등과의 친분 덕이었는데, 아내는 이소영 씨와 함께 이 행사의 리플렛을 함께 제작하기도 했다.


내가 이 두 음악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국악을 대하는 그들의 엄격함만큼이나 함께 갖추고 있는 열려 있는 자세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원해 소리를 배우고 대학도 국악과를 다녔던 이소영 씨는 우연히 진도 씻김굿을 접한 뒤 감명을 받아 직접 진도까지 찾아가 인간문화재들에게 가르침을 청했고 결국 씻김굿 전수자가 되었다. 김태영 씨는 진도에 있는 남도민속놀이문화예술원 예술감독 김오현 선생이 친아버지일 정도로 혈연 지연으로 민속예술의 피를 타고 태어나 자연스럽게 최고의 고수가 된 케이스다.


이들은 평소에 만나면 다정다감하고 재미있는 젊은이들이지만 일단 장구채를 잡거나 부채를 거머쥐고무대에 서면 순식간에 진지한 예술가로 돌변한다. 어제도 타악기 그룹 무취타의 일원으로 무대를 연 김태영은 힘차고도 섬세한 타악의 세계를 선보였고 다른 멤버들과 민요를 부르던 이소영 씨는 진도씻김굿을 공연할 때는 정말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는 영매가 되어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머리에 흰 고깔을 쓰고 나와 굿을 하던 이소영에게 관객들은 저마다 봉지에 든 쌀값으로 수십 장의 지폐을 고깔에 꽂아주고 갔다. 사회를 보던 소리꾼 방수미 씨가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앞으로 사회를 보거나 소리를 할 때는 고깔을 쓰고 나와야겠다고 농담을 했지만 우리는 그 돈이 몽땅 스태프들의 저녁 회식비로 쓰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김연아 갈라쇼를 보는 것처럼 남도예술의 고갱이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값진 무대였다. 관객들의 호응도 대단했다. 이소영 씨는 독무대로는 처음 서는 씻김굿인데 모두들 좋아해 줘서 정말 행복하고 감격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도 돌아갈 생각을 안 하는 관객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도 참 큰 행복한 일이야.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결핍도 없이 꽉 참 느낌이거든.”이라고 말했더니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못해 코끼리가 채찍을 맞으며 걸어가는 서커스 공연도 직접 가서 보면 재미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우리나라에서 남도예술을 가장 잘 하는 사람들이 떼로 모여 신명나게 노는 자리였으니 그 감동의 밀도를 다시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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