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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05. 2020

90년생이 온다

안산 에이스병원 <성장판> 세 번째 모임

우리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요. 아마도 책은 말과 달라서 잘 정리된 생각이 모여 있는 장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책을 혼자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여서 함께 읽거나 토론하는 것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년이 넘도록 가까운 사람들과 '독하다 토요일'이라는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이번 안산 에이스병원의 독서모임 <성장판> 모임의 토론 진행을 맡으면서 저는 함께 모여서 책을 읽고 이야기한다는 게 '집단지성' 체험의 축소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함께 모여 저마다의 독후감을 얘기하다 보면(설사 책을 끝까지 다 읽지 않았더라도) 신기하게도 책의 주제가 더 선명해지고 책의 가치를 더 입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매번 해왔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019년 12월 26일 저녁 6시 조금 넘어 안산 에이스병원 안에서 성장판 모임이 있었습니다(제가 어깨가 아파 그날 원장님을 만났는데 갑자기 시술 결정이 내려져 졸지에 입원 수속을 밟고 입원실도 정하고 하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혜신·이명수 선생의 [당신이 옳다]와 <아무튼, 술> <아무튼, 망원동> <아무튼, 피트니스> 같은  [아무튼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은 임홍빈의  [90년생이 온다]였습니다. 이 책 역시 많은 화제가 되었던 제목이었고 내용이었죠. 저자 임홍빈은 대기업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할 때 젊은 신입사원들을 인터뷰하면서 자기가 그들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읽을 자료로 만들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브런치에 연재하던 글은 책으로 묶여 나왔고 마침내 2019년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인소X  씨는 먼저 제목 때문에 끌린 책이었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왜 하필 화두를 90년대생으로 정했을까' 가 궁금했고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젊은이라는 세대 특징의 이유가 궁금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만난 젊은 직원들도 퇴근 10분 전에 PC 전원을 끄고 거침없이 여섯 시에 퇴근을 하는 사람들이라 더 그랬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자신을 기성세대가 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사람들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책을 읽어 가면서 '참견'과 '참여'를 구분할 줄 아는 그 세대의 긍정적인 면을 본 것도 소득이었다고 했습니다.

박민X 씨는 자신의 아들이 98년생이라 더 와닿는 책이었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아들과 그의 친구들이 줄임말이나 초성만 쓰는 언어습관조차 매우 못마땅한데 책을 읽고 나니 "엄마는 꼰대"라는 소리를 듣던 자신이 이젠 어느 정도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직장에서 자유시간제를 택해 오전 11시에 출근하는 친구들(어머, 어떻게 그 시간에 출근을 해?)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쟤들은 이상해'라는 선입견이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된 것이지요.

정유X  씨도 처음엔 "90년생이 뭐 어때서?"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자기 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그들의 일면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어느덧 그들과 기성세대 사이의 중간자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에 왜 조금 미리 들어와 근무 준비를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후배들을 다독여서 '사회생활이란 게 그렇게 자로 잰 듯 돌아가지 않는다'고 설득하는 애정 어린 마음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책에 나오는 인정 욕구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로 이해해 주면 좀 더 버티게 해 주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너 노력하는 거 안다, 라고 얘기해주는 것에서 세대 통합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출근 시간 10분 전 출근과 정시 출근 얘기가 나오자 좌중이 술렁였습니다. 여기 모인 분들과 90년생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그 지점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자신들은 X세대 이후라고 하지만 심지어 맞고 자란 경험(믿지 않겠지만)도 있을 정도로 구세대라는 증언들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출근시간 얘기를 하면서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위험성으르 가진 세대로서의 억울함과 불리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중간관리자로서 위아래 사이 샌드위치가 되어 양쪽 눈치를 모두 보이야 하는 피곤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물론 이 책엔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는데 어쨌든 세대 간 대립각을 세우자는 게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자는 데는 매우 유효한 책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었습니다.

제가 90년생의 긍정적인 면을 얘기해 보자고 했더니 제일 먼저 나온 얘기가 '화이트 불편러'였습니다. 소비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기업을 변하게 하고 공익에도 이바지하는 세대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인형 뽑기 기계가 사용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조작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거리의 풍경을 바꿔놓는 식입니다. 물론 같은 90년생이라도 개개인은 다 달라서 한 세대로 묶어버리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공통적인 특질을 살펴보면 아무리 보수가 좋은 직장이라도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안 들어가거나, 들어간 뒤에도 과감하게 박차고 나와 유튜브 등 자신만의 채널을 찾는 용기가 있는 세대라는 평도 많았습니다. 그런 건 참을성이 없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박민X  씨는 아들에게 "너희들은 결핍이 결핍되어 있다"라고 말하면서 군대 가서 고생 좀 해보라는 말까지 했다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우리 때는 그야말로 뭐든 게 절실했는데 얘들은 취직도 결혼도 그닥 열심히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죠. 그의 말대로 90년생은 결핍을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세대라고 충만한 삶을 살았겠습니까.  박민X 씨도 그런 걸 다 알면서도 자꾸 반어법적으로 그렇게 얘기하게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조은X 씨도 자기 남동생이 94년생인데 평소에 만나면 "어이구, 저 새끼..."라고 혀를 차지만 막상 엄마에게 공격 받는 모습을 보면 동생 편을 들게 된다고 하며 웃었습니다. 90년생이 외계인이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겠죠.

책 애기가 끝난 후에는 여담으로 유튜브 얘기가 잠깐 나왔습니다. 요즘은 책도 베스트 셀러가 되려면 북튜버의 힘을 빌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누군가 김미경의 유튜브를 잠깐 찾아보니 '90년생이 왔다'라는 제목의 꼭지가 있더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온다가 아니라 왔다라고 할 정도로 이미 메인 화두가 된 것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요즘은 책을 읽은 사람보다 안 읽은 사람이 더 많지만 책 제목만은 유행어가 되어 유튜브나 다른 콘텐츠가 되어 돌아다니는 이지러진 현실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등 다른 채널이 너무 많다 보니 정말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한숨 섞인 비탄도 흘러 나왔습니다.

진수X 씨 같은 경우는 바빠서 책을 거의 읽지 못하고 왔는데도 이 자리에 오길 참 잘 했다는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병원 근처의 돼지갈비집으로 가서 돼지갈비를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저는 다음날 시술을 앞두고 있었기에 맥주 두 잔으로 그치고 안주만 마구 입으로 몰아넣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회원분들의 간단한 세줄 평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다들 엄청 훌륭한 독후감들을 써오셨습니다.  


나나 여러분도 점차 기성세대가  것이고  세상에서 사라지게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어, 라는 말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있을 것이다. 내가 꼰대가 되었다고 임홍택이 말해 준다. - 인소X

세대를 봐야할까 아니면 시대를 봐야할까? 세대가 변화되어 가고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뻘라지는데 단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생각되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지 못해서 세줄 평을 준비하진 못했지만  자리에 와서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점들이 많다. '정직하다 정직하지 않다, 또는 참을성이 없다 있다가 아니라 예전 시대에서는 직업에서 직업으로 넘어가는 벽이 두꺼웠고 두려워서 넘어자지 못했을 뿐이라면 지금은 직업이라는 경계선조차 없지 않나.  일을  하고 다른 일을 해도 먹고   있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기 때문에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유튜브도   있으니. 과연 우리나라에 IMF  오고 세계경제위기도 오지 않았다면 90년대생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거쳤던 세대다. 그리고 90년생이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다. - 진수X (세줄 평은 아니고 그냥  느낀 점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책을 읽고 90년생을 이해한다기보다는 그들의 특징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면 '기본은 지키는 사람' '인성이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박민X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이다.  세대의 모습은 이전 세대의 위기와 변화에서 파생되었다. 이번 세대는 책임감을 갖고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지지해야  것이다. 누구나 기성세대가 된다.  또한 다가올 아니면 이미 왔을 Z세대와의 공존을 준비해야겠다. - 정유X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이제는 적응의 속도가 중요하게 되었다. 고속도로에서 혼자 늦게 가면 사고가 나듯이 우리는 이제 시대의 속도를 읽고 맞춰 나가야 한다. 책은 내게는 조금 올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앞으로는 2000년대생이 온다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책이 말하는 것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통하려고 한다면 일단 이해를 해야 한다. 그리고 대화를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말하는 , 그게 바로 꼰대다.  나는 꼰대를 앞으로 계속 탈피할  있을까 반성하게 되면서 시대를 계속 읽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 조은X

책을 읽으면서 90년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꼰대, 재미, 인내, 정직함 등의 키워드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질문과 예시를 통해 90년생을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써 선배 세대로서 현재를 반성하고 그들과 함께 미래를 도모하는   책을 읽는 목적이 아닐까 한다. - 편성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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